하지만 그러면 큰일 나지
이제 정말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한 달 동안 8년의 시간을 정리하려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아이가 그리고 만든 것들은 하나하나 보며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 손이 느려진다. 정리할 짐이 아직도 많지만 남편이 아침에 나가서 카페에서 일하다 점심 먹고 들어오자고 하길래 잠깐 고민하다 노트북을 들고 따라나섰다. 그 문은 닫아두고서.
우리에게 주어진 5주란 시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 짧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갈 마음은 전부터 먹고 있었으니 그에 대한 충격은 없었고, 다만 회사의 결정이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 정도였다. 미리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닥쳐서 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피로도가 높았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그들이 와서 몇 시간씩 있는 걸 견디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의 불편한 마음은 내가 꾸역꾸역 소화해야 할 몫이었다. 하필이면 바빠진 남편과 날 선 대화를 할 때나, 짧은 시간에 결정할 것들이 많을 때는 속이 쓰리고 주변을 돌아보기 힘들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너무 징징대는 것 같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놀아달라는 아이의 요구를 내가 대부분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이사 이게 뭐라고. 정신 차리고 아이가 하자는 걸 같이 했더니 금방 밝은 아이로 돌아온다.
큰 물건들의 거취를 결정하고 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1층에 있는 어두운 방을 기지로 삼았다. 천장 조명이 없어서 밤에는 작업하기 어려우니 낮에만 깔끔하게 일하고 싶었다. 비행기로 가져갈 캐리어와 가방, 배로 부칠 박스들을 펼쳐놓고 분류작업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금방 할 것 같았는데 이쪽에 넣었다 빼서 저쪽에 넣었다가 다음날엔 버렸다가 어떤 날엔 그냥 방문을 닫아버렸다. 널브러진 물건들을 보다 보면 전투력이 0으로 수렴하는 느낌이다.
화요일 오전을 카페에서 보내고 있으니 오늘은 정신 차리고 오후에 짐정리를 해야 한다. 지난주부터 날씨가 좋아 하교한 어린이가 매일 놀이터를 가고 있는터라 그때부터 밤까진 시간이 없다. 내일은 오전에 환송회가 있고 학교가 일찍 파하는 데다 수영 수업도 가야 하니 또 시간이 없을 예정이다. 토요일이 이삿날인데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도, 어쨌든, 다음 주 이 시간엔 난 비행기 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