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a Aug 21. 2024

이러다 핸디맨 되지

집 한 번 팔려다가

2017년에 집을 사서 들어왔을 때 몇 가지 고장 난 게 있었다. 1층 샤워부스 유리문이 반만 닫혔고, 1층 방문의 경첩에 달린 door stopper의 한 끝이 쇠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문에 구멍이 나 있었다. 1층 손님용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고 세탁실 환기타이머에서 계속 틱틱 소리가 났다. 2층 방에 커튼 봉과 커튼걸이가 남아있는데 빼려고 한 흔적이 벽에 남아 있어서 우리도 빼보려 했는데 절대 빠지지 않았다. 냉장고 내부 수납함이 반 이상 깨져 있고 물을 받을 수 있는 부분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세탁기는 세탁조 청소를 하고 돌려도 검은 이물질이 계속 나왔다. 스테이징 상태에서 집을 봤을 땐 몰랐는데 짐이 나간 뒤 보니 벽에 큰 못자국과 패인 자국들도 여럿 있었다. 샤워부스는 사용하지 않고, 구멍 난 문은 휴대폰 케이스로 대강 막아두고, 커튼은 샤워커튼링을 끼워 대충 걸고, 냉장고와 세탁기 및 건조기는 새로 구매해서 그냥 살았다.


아이와 함께 7년이 넘는 시간을 살며 집이 어찌 늙지 않을까. 벽에는 아이가 로션을 바르고 짚은 손자국과 크레용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고, 그림을 붙였다 뗐을 땐 가끔 페인트가 같이 떨어져 나왔다. 모서리마다 붙여놓은 보호대를 뗐더니 그 부분만 색이 달라져 있었다. 안 그래도 낡았던 1층 카펫은 한층 더 낡아졌다.


집을 팔려고 마음먹으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리얼터에게 소개받은 핸디맨에게 수리를 요청했다. 일단 샤워부스 문은 교체해야 하나 싶었는데 핸디맨이 뺐다 끼워서 기름칠을 하니 잘 닫혔다. 방문은 교체해야 하나 싶었는데 안 쓰는 은행카드를 잘라 구멍 난 곳에 끼우고 메꿔서 흰색 페인트를 칠했더니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티가 안 날 정도가 됐다. 세면대 물 떨어지는 건 집에 들어오는 물을 다 잠그고 여기저기 건드려보더니 온수가 들어오는 부분이 새는 거라며 그걸 아예 잠그면 물이 안 떨어진다고 했다. 완전히 고치려면 대공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환기타이머는 원래 저런 소리가 나는 거라고 해서 미국 사람들은 이런 소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나 의아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벽에 얼룩지거나 페인트가 뜯긴 건 페인트샵에 가서 페인트를 맞춤으로 제조해서 발라야 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릴 거라며 우리 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쿡탑이 계속 불 붙이는 소리가 나는 문제가 있어 그것도 봐달라고 했는데 한 시간 넘게 상판을 열지 못해 포기하고 가셨다. 여기까지 여섯 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330달러가 청구됐고 팁을 40달러 드렸다.


며칠 뒤 지붕 이끼 제거도 같은 핸디맨을 불렀는데 12시 반부터 8시 가까이 작업을 했다. 밖에서 봤을 땐 이끼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았는데 힘들어하는 핸디맨의 신음소리를 계속 집 안에서 듣고 있자니 그렇게 부담일 수가 없었다. 지붕에서 일하고 있는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도 없어서 기다리다 7시 반쯤 나가서 이제 그만하고 내려오시라고 했더니 지붕이 너무 넓어 힘들다고 푸념을 하셨다. 이쯤 되니 핸디맨이 한국 사람인 게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또 330달러가 청구됐고 팁을 80달러 드렸다.


어쨌든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을 수리해서 한숨 돌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연노랑색 벽의 얼룩은 지우개로 열심히 지우고 흰색 벽은 페인트로 다시 칠했다. 타일 전용 세제와 전동 청소솔을 사서 욕실을 청소하고, 블라인드를 다 꺼내 기름기 묻은 먼지들을 닦아냈다. 신나게 삼겹살 구워 먹던 지난날의 우리를 반성하면서.


며칠 후 인스펙션 전문 업체가 와서 집을 모두 점검하고 가더니 열 세장의 보고서를 보내왔다. 그중 리얼터가 핸디맨을 불러 고치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 또 같은 사람을 불렀다. 샤워부스와 욕조, 수전, 싱크대 및 변기에 실리콘을 두르는 작업이었는데 굳이 공휴일에 오셔서 또 여섯 시간 정도를 끙끙대며 하고 가셔서 330달러에 팁 20달러를 들려 보냈다. 작업결과는 정말 돈을 주고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삐뚤빼뚤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샤워부스 바닥이 핸디맨의 청바지색으로 이염된 걸 보곤 투덜대며 지웠다. 그런데 다음날 싱크대와 수전에 두른 실리콘이 다 떨어져 나가는 걸 보니 화가 좀 났다. 리얼터에게 말하니 불러서 보수를 하라는데 작업 마치길 기다리며 또 시간을 버리기 싫어 거절했더니 다른 핸디맨을 알려줬다. 핸디맨이 여럿 있으면 진작 좀 알려주지... 한국 사람이 편하다고 선택한 결과는 결국 우리가 감당할 몫이다.


집 고치는 단란한 시간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돈도 천 달러 넘게 쓰고 결과가 이렇게 마음에 안 들 거라면 이제 더 이상 핸디맨을 부르지 말고 우리가 해보자 싶었다. 이전 주인이 사용했던 페인트가 차고에 남아있어서 그 색조합을 페인트샵에 가서 말했더니 10분 정도 지나 작은 페인트통(20달러 정도)으로 하나 만들어줬다. 핸디맨의 말처럼 한 달이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그걸 지저분한 벽에 발랐더니 색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패인 부분은 drydex로 평평하게 메꾼 다음 페인트를 칠하니 또 감쪽같았다. 핸디맨이 망치고 간 곳은 실리콘 작업을 다시 하여 벌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점점 바뀌는 집에 신이 났는지 남편은 여기저기 보수를 해댔다. 제법 멀끔한 것이 남편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구나 싶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을 7년이나 손 안 대고 불편하게 살았다 우리가. 꼭 멍청세를 내 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 어느 날보다 신상인 우리집


그리고 남편이 미국을 떠나는 날, 우리 집은 우리가 이 집에 살았던 날 중 가장 깨끗하고 고장 없는 집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