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크 타이프 Feb 22. 2018

정치학 배웠다고 정치 잘하냐?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다. ‘정치학자’라는 공식적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아직 자격 미달이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 정도로 말하면 되겠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늦은 나이에 정치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정치학도 몇 가지 분야로 나뉜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분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한다. 정치사상, 이론 및 방법론, 비교정치, 한국정치 그리고 국제정치, 이렇게 다섯 분야다. 강의내용에 따라 분야를 배정하는 특강 수업을 진행할 때도 있다.   

   

대학원생들은 이 다섯 분야 중 가장 관심있는 하나를 세부전공으로 선택한다. 세부전공에 대한 몇 년 간의 수업과 연구를 거쳐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대학원생의 일이다. 나의 세부전공은 국제정치 분야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당연히 국제정치와 관련한 학위논문을 마치게 될 것이다.      


세부전공 분야 외 두 번째로 - 때로는 첫 번째로 - 재밌는 분야는 ‘정치사상’ 분야다. 정치사상 또는 정치철학 분야*를 좋아하게 된 연유를 써 본다면 대강 이렇다:


정치사상을 제외한 여타 분야는 현상을 분석하는 연구에 초점을 맞춘다. 원인변수가 어떻고, 결과변수가 어떻고...이런 것을 따진다. 전쟁, 독재정권의 탄생 등 어떤 정치 현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연구한다. 하지만 정치사상 또는 정치철학은 현상분석보다는 ‘개념’과 ‘가치판단’에 치중하는 분야다. 정의(justice)란 무엇이고 공정한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따위를 고민한다.      


사상 또는 철학이 붙는 학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씩은 듣는 질문이 있다. “그거 해서 뭐해 먹고 살거냐”는 핀잔 섞인, 질문이 아닌 것 같은 질문이다. 정치학이란 학문도 써먹을 데 별로 없는 학문인데 정치사상이라니. 정치사상을 세부전공으로 택한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치현장에 있는 사람들조차 종종 – 아니 그보다 더 자주 - 정치학 배워서 어디에 쓸 거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정치학 배웠다고 정치 잘하는 것 아니라는 말도 덧붙인다. 물론 다른 학문들도 그런 회의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예컨대 "경영학 배웠다고 장사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다만 유독 정치현장 – 정치판이라고도 한다 – 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부정적 믿음을 더 강하게 갖고 있다. 더구나 정치사상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면 피식 웃는 사람도 있다. 정치학의 탈정치화, 정치철학의 탈정치화를 격감하는 순간이다. 정치에 대한(about) 학문이 정치를 위한(for) 학문이 되지 못하는 슬픔이랄까.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정치철학이야말로 현실정치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한 분야다. 현장에서의 정치는 ‘의사결정’을 하는 행동의 연속이다. 어떤 정책을 펴야 할지, 어떤 유권자를 공략해야 할지 따위를 끊임없이 결정하는 일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삶이 의사결정의 연속이지 않은가.  

   

정책적 의사결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문제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에 대한 몇 가지 대안들을 생각해보고, 그 중 한 가지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대안 선택)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가치판단’이다. 다양한 대안 중 왜 특정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지, 왜 그 대안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작업이다. 하지만 어떤 대안이 더 가치가 있고, 더 옳은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완전무결한 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든, 정책이든, 인생이든 정답은 없다.

 

이 정도만 생각해봐도 정치철학이 왜 현실정치, 정치현장과  밀접한 것인지 직관할 수 있다. 정치철학은 결국 정치적 행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그 방향을 정하는데 필요한 기준과 가치를 고민한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데올로기도 결국 어느 방향으로 갈지에 대한 고민과 다름 아니다. 정치적 판단에 있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자신의 대안이 보다 합당함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다만 가치와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이 없다면 그 정치적 판단은 사리사욕에 오염될 확률이 높다.


정치철학은 바로 그 과정을 보다 세련되게 다듬는 훈련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훈련을 거쳐야 한다. 한국 정치판이 그다지 멋있지 않은 이유는 이런 훈련을 안 받은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 아닐까. 정치학 배웠다고 정치를 잘할까? 정치철학이 정치하는데 무슨 필요가 있을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John Rawls)의 책 <공정으로서의 정의-재서술(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내용 중 일부를 번역해보니 대충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철학의 한 가지 임무, 말하자면 정치철학의 실천적 역할은...문제들에 대한 철학적·도덕적 합의의 근원적인 기반을 찾아내는 과정이다...그 기반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정치철학을 통해 우리는 정치적 분열을 일으키는...철학적·도덕적 견해 차이를 좁힐 수는 있다.**


* 엄밀히 따지면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은 다른 분야라 할 수 있다. 사상은 보다 역사성을 띤 생각의 큰 흐름을 다루고 철학은 학문적 성격을 띤, 보다 체계화된 사고의 양태를 다룬다...정도로 해두자. 이 글에서는 "정치사상 = 정치철학"으로 간주한다.


**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 suppose, then, that one task of political philosophy – its practical role, let’s say – is to focus on deeply disputed questions and to see whether, despite appearances, some underlying basis of philosophical and moral agreement can be uncovered. Or if such a basis of agreement cannot be found, perhaps the divergence of philosophical and moral opinion at the root of divisive political differences can at least be narrowed so that social cooperation on a footing of mutual respect among citizens can still be maintained."

- John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p.2.

이전 12화 운동화 끈 한 번 매기가 이토록 힘든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