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크 타이프 Jun 26. 2019

운동화 끈 한 번 매기가 이토록 힘든 이유

- 운동은 기본적으로 소비활동이다

이여망

노출의 계절, 여름이다. 우리는 이 여름을 위해 지난 1월 헬스클럽을 끊었다. 6개월이 지났지만, '이여망.' 이번 여름도 망했다. 헬스클럽에 매달 기부한 돈, 소득공제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일주일에 한 번, 운동화 끈 매고 짐(gym)에 가는 것도 힘겹다. 의지력과 끈기와 목표의식의 부족? 글쎄다. 이 글은 이러한 '지속적 돈지랄'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석이다.


운동과 노동

자본주의 차원에서 보면 '몸 쓰기'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운동(exercise)과 노동(labour). 똑같은 몸 쓰기인데 운동과 노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운동은 소비활동이고 노동은 생산활동이다. 그렇다면 또 소비활동은 무엇이고 생산활동은 무엇인가? 소비는 돈을 써서 나의 자유의지를 성취하는 활동, 생산은 당연히 소비를 위해 돈을 버는 활동이다. 이제 우리는 20kg짜리 생수통을 매일 100개씩 배달하는 사람이 일을 마치고 헬스클럽에 가서 20kg짜리 덤벨을 100번 들어 올리는 이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헬스클럽을 끊는다. 물론 골프 레슨이나 수영 강습을 받기도 한다. 운동으로 돈을 버는 프로 야구선수는 어떠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자본주의 차원에서 보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프로 야구선수 역시 야구로 번 돈으로 강습비를 내고 골프 레슨을 받지 않겠나.


우리는 소비를 아주 좋아한다

우리는 소비를 아주 좋아하며 노동을 아주 가끔 좋아한다. 소비활동은 기본적으로 즐겁다. 한여름에 마시는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꿀이 아닌데 꿀맛이 난다. 점심 값에 육박하는 4천 원이 아깝지 않다. 귀갓길에 들른 다이소, 천 원짜리 머리카락 거름망 하나 샀는데 샤워가 즐겁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신조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또 다른 소확행(소비는 확실한 행복)과 직결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울할 땐 천 원이라도 써라!


깊이 따져볼 필요도 없이 헬스클럽에 한 달 회비 5만 원 내지 10만 원을 내고 운동하는 것도 엄연히 소비활동이다. 휴일은 그냥 쉰다 치고 한 달 20일로 나누면 매일 2500원 내지 5000원을 내고 클럽에 입장하는 셈이다. 입장료 내고 땀 빼는 방식의 소비활동이란 점에서 강남 클럽이나 헬스클럽이나 차이가 없다. 그래서 모두 '00 클럽'이라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일주일에 헬스클럽 한 번 입장하기가 그토록 힘든 것일까.


운동은 소비활동

생각건대 그 이유는 헬스클럽에서의 운동이 기본적으로 '소비활동'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운동을 건강과 자기 관리,  체중 관리, 몸매 관리 훈련(discipline)으로 인식한다. 힘든 노동을 끝내고 또 혹독한 훈련을 하자니 피곤이 몰려온다.


힘든 노동으로 번 소중한 돈으로 마음껏 즐겨야 하는 소비활동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소셜 매트릭스 분석 결과를 대강 해석해보면 "운동이 좋은 건 알지만 힘들다"는 감성이 지배적임을 추측할 수 있다. (분석 결과에 있어 '불매, 불매운동'은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활동(movement)을 의미하는 것이니 논의에서 제외하자.)

운동이 기본적으로 즐거운 소비활동임을 먼저 생각한다면 헬스클럽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냥 샤워를 하러 가도 괜찮다. 샤워를 먼저 하고 산뜻한 몸과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해도 좋다. 강남 클럽 갈 때도  때 빼고 광 내지 않나.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게 아니라면 듣고 싶은 노래를 카운터에 신청해 봐도 좋다. 벽 한편에 붙어 있는 스트레칭 가이드 포스터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몸풀기만 실시해도 20분은 훌쩍 간다.


이왕 TV 드라마 볼 거라면 트레드밀에서 슬슬 걸으며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걷다 보면 지루해서 뛴다. 기구 하나 잡아 딱 100번만 리프팅(들어 올리기)하고 집에 가도 좋다. 성격 좋아 보이는 트레이너에게 운동 요령을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수기 옆에 가면 한 두 명씩은 꼭 있는 프로틴 쉐이커들에게 "지금 드시는 거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신나서 얘기해 준다.


헬스 장갑이든 스트랩이든 무릎 보호대든 맘에 드는 운동 보조 도구를 한 두 개 구입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나의 경우 일전에 트레이너에게 스트랩 하나를 선물 받았다. 하필 색깔이 핑크라 좀 어색하지만 '스트랩 휘감아 바벨 들어 올리는 맛'이 쏠쏠하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사실 운동화 끈 질끈 매고 헬스클럽에 입장하기가 어렵지, 막상 가면 열심히 운동하게 되어 있다. 이것도 해 본 사람은 안다.


멋진 근육을 키워보겠다는 목표, 건강하고 탄력 있는 몸매를 향한 결의, S라인을 만들어 비키니를 입고 인생샷을 찍어 보겠다는 욕심. 이런 것도 좋지만 우선 운동은 즐거워야 한다. 관리(management)도 아닌, 훈련(discipline)도 아닌, 놀이(play)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경험과 재미를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플레이슈머(playsumer)라 한다(책 <끌리는 것들의 비밀> 중).


헬스클럽에서의 운동이 재미가 없다면 다른 운동이나 취미를 찾아보는 게 낫다. 왜 내 돈 내고 힘겹고 지겨운 몸 쓰기를 또 해야 하는가. 돈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런 몸 쓰기는 '노동'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체지방 20%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이전 11화 닥치고 푸시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