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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Dec 28. 2017

기록에 대한 단상

기록은 언제나 기억을 이긴다

기록의 위대함은 시간을 초월함에 있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된 것들은 ‘과거’라는 시간에 갇혀 있지만 동시에 그 과거에서 자유롭다. 기록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올리는 하나의 의식(ritual)이다. 기록을 통해 과거는 영원한 현재성을 얻는다.  

    

기록은 때때로 정당화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는 <전두환 회고록>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을 “5.18의(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표현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기록했다. 기록을 통해 자신의 ‘국민 학살’을 ‘불가피한 국가 행위’로 정당화했다. 이에 법원은 왜곡한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전두환은 일부 내용을 삭제한 채 책을 다시 출간했다.      


기록은 언제나 기억을 이긴다. 영리한 정치가(아니 정치꾼) 전두환, 그는 기록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그는 5.18을 겪었던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에 대항하고자 책을 펴낸 것이 아닐지 모른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변명을 하고자 함도 아닐 것이다. 그는 기록이 가지는 ‘불멸성’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평가를 미래에 보류하려 한 것이다. 기억은 희석되고 왜곡되며 소멸된다. 그러나 기록은 수 십 년, 수 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는다. 시대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기록된 내용은 재해석되기도 하고 미화되기도 한다. 전두환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벌어지는 기억과 기록 사이의 간극을 교묘히 이용하려 한 것이다.      


정치인들도 기록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올해도 많은 정치인들이 자서전을 펴냈다. 기록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하나의 ‘사건’으로,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사상’으로 승격시킨다. 물론 자신의 경험과 기억이 사실에 근거하는 한 이들의 기록이 도덕성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사를 촘촘하게 채우는 훌륭한 사료(史料)가 될 수 있다.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 모든 이들이 남기는 기록은 ‘역사’라는 태산을 이루는 티끌이다. 나의 기록이 언제 “해동”되어 누구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의미를 안겨 줄지 모른다는 사실에 흥분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이쯤에서 박성원의 소설집 <하루> 중 어느 단편의 일부를 옮긴다.

턴테이블에는 ‘앤드웰라스 드림Andwella’s Dream이 올려져 있었다.
1969년도 앨범이니까, 그래. 40년 이상 냉동되어 있던 음악들이 해동되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 <볼링의 힘>,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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