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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다 1

탁상형 달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by 마이크 타이프

2025년이 두어 달 남았다. 와인바를 창업한 지 딱 1년이다. LTE급 세월의 속도는 언제나 놀랍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래도 잘 버텼다는 생각과 내년은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절박감은 언제나 동반한다. 자주 방문해 공간을 채워주었던 단골손님에 대한 감사와 좀 더 많은 신규 손님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교차한다. 와인바의 성수기인 연말을 앞두고 뭐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찾아온다.


이런저런 생각과 다짐과 고민 끝에 고객 사은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은품으로 '탁상형 달력'을 맞춤으로 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한 해를 시작하는 고객들에게 유용한 물건, 일 년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도출된 아이디어다. 뭔가 유니크한 판촉물은 아니지만 상상력의 부족 속에서도 나름의 고민을 거듭해 얻은 아이디어.


이왕이면 예쁜 달력을 만들고 싶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매년 여기저기서 달력을 공짜로- 물론 요즘엔 달력 주는 곳도 많이 줄긴 했지만 - 받는다. 벽걸이 달력도 가끔 받지만 탁상형 달력을 더 자주 받는다. 보험 설계사가 달력을 건네기도 하고, 우연히 방문한 자동차 대리점에서, 주거래 은행에서 달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내 책상에 올라와 있는 탁상 달력은 공짜로 받은 달력이 아닌 내가 돈 주고 산 달력이다. 무엇보다 공짜로 받은 달력은 어딘가 모르게 촌스럽고 디자인이 그야말로 '구리다'.


그 이유는 역시 제작 비용 때문.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 신박한 아이디어를 입힌 달력을 제작하려면 아무래도 제작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 기성품을 - 기존에 쓰던 스프링, 대량 생산되어 있는 받침대, 저작권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이미지 등으로 만들어놓은 - 활용해 달력을 만들어야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비용을 줄여 기성품을 활용하고 개수도 1,000개 이상 대량 제작해도 A5용지 크기의 탁상달력 하나 만드는데 5000원이 훌쩍 넘는다.


결국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 비용을 줄이자니 아무도 쓰지 않는 디자인 '구린' 무용지물 달력 처지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 같다. 비용 생각하지 않고 정말 예쁜 탁상 달력을 만들어보자, 결심해 보지만 빠듯한 예산이 또 걸린다.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물건이 차고 넘치는 풍요의 시대에 여기저기서 받은 고객 사은품을 제대로 사용했던 적이 있던가. 그랬던 적을 상기해 보면 언제나 "예쁘고 쓸만한"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와인바의 고객들에도 예쁘고 쓸만한, 그리고 독특한 달력을 선물해 보자.


달력 전체의 디자인과 날짜 구성의 레이아웃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와인바의 '굿즈' 같은 걸 만든다면 내가 틈틈이 그린 그림들을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터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름 창대해진, 내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 가게 벽면이 와인바의 '시그니처'라면 시그니처. 고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은 그림들과 나름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들 중 달력 이미지에 쓰일 베스트 12를 선정해 보았다. 2026년, 고객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도 만들어봤다: "올 한 해 서서히 당신의 진가가 드러나길" 요즘 흔히 쓰이는 디자인 툴, canva로 대강의 스타일을 구성해 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다음날 대강의 디자인 파일을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무작정 을지로역으로 향했다. 을지로 방산시장과 을지로3가역 사이에는 인쇄업체와 판촉물제작업체, 달력과 다이어리 제작업체가 군집해 있다.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곳, 꽤나 재밌는 곳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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