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크 타이프 Sep 15. 2018

[서평] 나는 너를 본다

원제: I See You

영국 여류 작가 클레어 맥킨토시(Clare Mackintosh)의 스릴러 소설 <나는 너를 본다(I See You)>. 서점 내 신간 가판대에 놓여진 두툼한 책을 서슴없이 집어든 이유는 순전히 강렬한 책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블루와 그린 톤이 오묘하게 섞인 스산한 분위기의 비오는 거리. 몇 발자국쯤 앞서 걸어가는, 빨간색  하이힐을 신은, 매끈한 다리를 가진 어느 여성의 뒷모습. 누군가 그녀를 뒤에서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비에 젖은 어둑한 길바닥에는 강렬한 붉은 색의 낙엽이 흩뿌려져 있다. 당장이라도 덮침을 당할 것 같은 여자의 위태로움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책표지만으로도 이 소설이 촘촘하게 잘 엮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직관했다. 마침 밤 11시쯤 책을 펴기 시작했을 때는 제법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설의 첫 페이지는 우중충한 비가 내리는 런던의 11월, 한 중년 여자(조 워커)의 축축한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런던에 사는 소시민 조 워커. 퇴근길, 그녀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로 향한다. 환승 열차를 기다리며 무인 발매기 선반에 놓인 <런던 가제트> 신문 한 부를 집어 든다.


붐비는 열차 안에서 신문을 넘기다 지면에 실린 온라인 데이트 웹사이트 광고에 시선이 꽂힌다. 광고 사진  속 여자 모델의 얼굴 ,모델이라 하기엔 너무 평범한 그 얼굴이 낯설지 않다. 아니, 너무나 낯익은 얼굴이다. 사진 속 여성은  바로 조, 그녀였다.

그런데 내 사진이 왜 실렸을까요 (p.31)

<런던 가제트> 신문의 지면에 실린 광고 속 여성 모델들은 거의 모두 하나 같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우연의 일치'에 엮인다.  열쇠를 도난 당해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고, 강간을 당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 워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녀의 직감처럼 "위험을 볼 수 없어도 느낄 수는 있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p.135)" 느낄 수 있다.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p. 119)

소설 <나는 너를 본다>에서도 어김없이 매력 넘치는 형사들이 등장한다. 능력이 출중한 베테랑 형사 닉 렘펠로 경위와 열혈 여형사 켈리 스위프트. 켈리의 쌍둥이 여동생 렉시는 대학시절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그녀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켈리는 조 워커에게 닥칠 위험을 막기 위해 사건 전담팀에 자진 합류한다.


<나는 너를 본다>는 페이스북과 SNS 등으로 허술해진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온라인 블라인드 데이트 플랫폼이 변질되어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스릴러 소설로 풀어냈다. 평범한 여자들의 일상이 비밀 웹사이트를 통해 유통되는 특별한 시장. "런던 전역을 다니며 여성을 물색하고 그들의 출퇴근 정보를 팔아 남자들이 사냥할 수 있게(p.413)" 만든 악마의 비즈니스. 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범인은 과연 누굴까.

더 높은 가격. 더 특별한 시장. 나는 단순한 중매쟁이를 넘어설 수 있어. 그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을 해결해주는 존재지. 남을 해치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회에서 용인하는 범위를 넘어 누군가를 강압적으로 대하는 경험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가 거절할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기회 말이야." (p.278)

<나는 너를 본다>는 여자들이 일상 속에서 한번쯤 느껴보았음직한 공포를 스릴러 소설로 촘촘하게 엮어냈다. 스릴러 소설의 3대 구성요소인 Who done it? How done it? Why done it? 중 'Who done it?'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나는 너를 본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 듯한 발소리가 들릴 때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본 사람이라면 이 유려하고도 소름 끼치는 도시 괴담에 몸서리칠 것이다. - 루스 웨어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작가 (<나는 너를 본다> 추천사 중)

책에는 여류작가의 섬세함과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 공포에 대한  공감(sympathy)이 소설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다만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빠른 전개감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인간 사냥 게임'이라는 기존 영화 등에서 자주 다룬 바 있는 소재가 스릴러물의 쫄깃한 반전의 쾌감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소설 중간 중간에 범죄자의 내레이션을 첨가해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서늘한 공포감을 효과적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범죄자의 내레이션 내용을 회백빛의 책 내지에 담은 북디자인의 참신함도 포인트. 여러모로 이 책은 북디자인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일상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낯선 사람의 시선', 오늘도 누군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진 않을까. 특히 이렇게 비오는 밤에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단극 정치 이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