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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Mar 19. 2019

[서평]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상실을 품은 현실에 대하여

* 소설의 첫 문장: 내가 태어난 날은 1951년 1월 4일이다.   

   

1951년생 외동아들로 태어난 하지메, 같은 해 외동딸로 태어나 하지메의 초등학교에 전학 온 시마모토. 다리를 약간 절지만 예쁘고 총명한 소녀였던 시마모토와 ‘외동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진 하지메.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는 이 한 문장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의 어느 날, 나는 시마모토와 둘이서 그녀의 집 거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레코드를 듣고 있었다.” - p.21     


하지메와 시마모토는 각각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언젠가부터 이 둘은 서로 점점 멀어지게 되고 아예 발길을 끊게 된다. 서로를 필요로 했음에도 사춘기 미묘한 연령의 고비를 넘지 못할 것일까. 하지만 이 사실은 하지메에게 ‘결핍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의 시작이었다. 하지메는 고2 때 ‘이즈미’라는 나름 괜찮은 여학생과 교제하며, 자기만의 세계에서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자신을 확립시키려 노력한다.      


평범한 대학생활을 마치고 출판사에 취직한 하지메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하지메가 항상 추구했던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 시마모토의 잔상이 하지메의 마음을 자꾸 끌어당기는 것이다.     

 

서른 살에 하지메는 유키코와 결혼을 하고 장인의 도움으로 재즈음악 바를 시작한다. 그의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세계에 “환상처럼 나타난 첫사랑의 여인” 시마모토가 찾아온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 시마모토는 하지메가 사는 현실의 삶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만드는 신기루. 그녀를 다시 만난 하지메에게 현실과 그를 둘러싼 일상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시마모토, 가장 큰 문제는 내게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거야. 나라는 인간에게는, 내 인생에는, 뭔가가 빠져 있는 거야. 상실되어 버린 거야. 그리고 그 부분은 언제나 굶주려 있고 메말라 있어. 그 부분은 아내도 메우지 못하고 애들도 메우지 못해.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너 한 사람밖에 없어.” p. 279     


신기루가 언제나 그렇듯, 시마모토는 다시 하지메 곁에서 사라진다. 하지메에게 남은 것은 다시 현실. 이제 하지메는 깨달았을 것 같다. 자신의 인생에 뭔가 상실되어 버린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다면 그 상실되어 버린 부분은 영원히 상실된 채로 남아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상실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실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의 부분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의 부분들을 ‘현실’이라 부른다.      


책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실린 '작품 감상을 위한 노트'가 지적하는 포인트는 이렇다.      

“시마모토처럼 공허한 삶을 살아도 안 되고, 이즈미처럼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완고한 삶을 살아서도 안된다는 것. 그리고 삶의 현실은 그 순수했던 기억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유키코처럼 배반의 아픔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성숙된 힘을 기르고, 하지메처럼 자신의 내부에 사악함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p.349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그의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환상과 상실이 뒤섞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상실의 순간이 있었고, 추억의 순간이 있었다. 그런 과거들을 절실하게 그리워할 때도 있다. ~했더라면...아마도...이런 가정 속에서 어떤 헛헛한 환상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모든 상실된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와 기반은 바로 '현실'이라는 것. 이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간이란 건 어떤 경우에는, 그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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