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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Mar 27. 2019

카페식(食)이 뜬다

스피노자 라이프 스타일의 확장 모드

사람들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만든다. 하나둘씩 지나가다 보면 없던 길이 생기는 것처럼 개인의 생활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기 시작하면 하나의 대중적 생활양식이 생긴다. 이러한 대중적 생활양식을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사한 속성을 가진 라이프 스타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우리는 또한 라이프 트렌드(life trend)라 말한다.


여기 재밌는 신문 기사가 있다. 중앙일보 3월 26일 자 <라이프 트렌드> 섹션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밥 먹고 카페 가니? 난 카페서 밥 먹어.' "1차는 밥, 2차는 커피라는 일상 속 공식이 2030세대를 주축으로 깨지고 있다. 마치 투인원(2 in1) 제품처럼 밥과 커피를 카페에서 한 번에 해결하려는 젊은 층이 늘었다"는 내용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22047

카페가 단순히 커피 마시는 곳이 아닌 "학업, 업무, 취업 준비"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된지는 꽤 오래전이다. 여기에 더해 '점심시간'이라는 직장인의 최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장소로 카페가 인기를 더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꽤 합리적인 라이프 트렌드다. 오피스 타운에서 근무해 본 직장인들은 알 것이다. 맛집에서 점심 좀 먹을라 치면 일이십 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 줄 서는 게 싫어 11시 30분에 나오면 내 앞에는 11시에 나온 이들이 있다. 점심도 경쟁이다. 후딱 먹고 커피 한잔하려고 자리를 옮기다 보면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줄을 서야 하는 카페도 부지기수다. 커피 한 모금 입술에 적시면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넘는다. 꼬장꼬장한 부장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생각하면 발길이 바빠진다.


여기에서 삶의 부조리가 발생한다. 11시 30분에 나와 점심 식사를 시작하고 1시 30분에 사무실에 들어가면 소요 시간 2시간. 2시간이면 얇은 책 한 권을 읽는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2시간 점심의 여유를 만끽했는가. 그렇지 않다. 더구나 이제 우리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점심시간도 칼 같이 지켜야 할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카페에서 밥'을 먹고 여유롭게 한 자리에 앉아 커피도 하는 '카페식(食)'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카페식'은 여가를 중시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압축해서 '여유로움'을 확장하려는 개인들의 몸부림 아닌 몸부림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스피노자 철학"(시네21, 1197호 p.59)의 실천 운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얘기일까.


신문 기사대로 영리한 대형 카페들은 "합리적인 식사 대용 메뉴를 선보이고 매장 공간 구성도 편의성을 강화"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소비 행위'로 전환시키는 이 탁월한 능력이란.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들 카페들이 개발하는 메뉴들은 거의 다 샌드위치와 같은 '서양식' 메뉴라는 점이다. 에그마요, 올리브베이컨치아바타, 로제펜네그라탕, 에그 데니쉬, 스파이시 씨푸드 리조또 등등.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제육덮밥, 김치전골, 삼치구이, 육개장을 카페에서 먹는 날이 올까. 카페에서 이런 쿰쿰한 냄새나는 한식을 먹고 2in1으로 커피 마실 여유를 즐길 수 있을지. 아무래도 냄새와 식사 포뮬러의 이질성을 극복하긴 쉽지 않겠다. 한 자리에서 '가정식 백반 + 커피'라는 이질적 정서와 어색한 매칭을 해소하기도 쉽진 않을 것이다. 만약 이를 해결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그 카페 - 아니 그 가정식 백반집 - 의 대박은 따놓은 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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