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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Sep 07. 2019

[서평] 웬일이니! 피츠제럴드

난 왜 또 이딴 걸 읽고 있나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토요일 저녁이다. 북상하는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서울엔 강풍을 동반한 - 폭우가 아닌 - 고요함이 휘몰아치고 있다. 비가 없는 태풍, 그러니까 메마른 태풍이 서울을 감싸고 있다. 어제부터 날아오는 재난문자 때문인지 거리는 조용하다. 때마침 들른 카페에 설치된  TV에서는 바하마(Bahamas)라는 곳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소식을 전하고 있다. 나는, 이를테면 허리케인과 태풍 사이에서 고요한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폭풍 같은 몇 주간의 일상을 보내고 나니 일종의 나태함이 절실했을까. 소소한 잡스러움으로 시간을 때우고 싶어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카페에 앉아 있다. <웬일이니! 피츠제럴드>라는 책인데, 어디서 구한 책일까 기억해보니 올해 국제도서전에서 어느 출판사의 가판에 진열된 특별 염가 판매 도서였다. 단돈 2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장에 던져놓다시피 했던 책인데 오늘 같이 '나태함'이 컨셉인 날에 제격인 책이다.

책은 프롤로그에서도 이렇게 밝힌다. "우리는 왜 또 이딴 걸 만들었나."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 등 출판사 3사의 편집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으로 "모두들 스콧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고 그의 책을 직접 만들고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책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단면, 부인과의 관계, 그의 물건, 부인의 그림 등등을 소개한다. 약간 두서없고 산만하며 다초점의 글들을 접하니 오히려 '책'이 주는 정서적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력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책의 구성 때문에 "모쪼록 즐겨주시길" 바라는 저자들의 바람대로 읽는 맛이 짭짤하다.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신의 작가, 스콧은 어린 시절부터 문필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24세에 발표한 첫 번째 장편소설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 1920)>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5년 뒤에 나온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았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 재즈 시대에 관한 정확한 묘사, 사랑과 물질주의와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엄중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소설이다. (다만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진 못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들과 삶의 단면 등을 책 <웬일이니! 피츠제럴드>를 통해 접하면서 무엇보다 흥미가 당기는 지점이 있다. 그의 소설들이 다루고 있다는 '포효하는 20년대', 이른바 재즈 시대(Jazz Age)라 불렸던 미국의 전성시대(?). 책은 작가의 면모들을 통해 미국의 재즈 시대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과 일러스트 등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삶은 <위대한 개츠비>라는 걸작을 완성한 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지독한 술꾼이었으며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던 그는  히트작 이후 작품들의 잇따른 실패로 깊은 슬럼프를 겪는다. 그는 자신을 "금이 간 접시"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금이 간 접시는 식기 보관실에 남아 있으면서 가정의 필수품 역할을 해야 한다. 화덕에서 온기를 전해 받거나 설거지통에서 다른 접시들과 섞이게 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나가는 일도 없겠지만, 늦은 밤 크래커를 담게 되거나 남은 음식들을 담고 냉장고로 들어가게 되는 일은 있을 것이다.

- <웬일이니! 핏츠제럴드> p. 100

책을 다 읽고 나면 핏츠제럴드라는 소설가와 커피를 사이에 두고 잡담을 나눈 기분이 든다.  미국의 레트로 감성을 듬뿍 담은  사진들과 일러스트들이 책의 곳곳에 배치되어 '읽는 맛'을 더했다. "또 이딴 걸 만들"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난 또 왜 이딴 걸 읽으며 이딴 서평 따위를 남기나 싶지만, 때로는 '잡스러움'이 가치를 발할 때가 있다. 태풍 속 고립된, 고요한 기분 속에서, 주말 빈둥거림을 부스팅하고 싶다면 이 책 <웬일이니! 피츠제럴드>를 권한다. 참고로 한정판이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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