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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Oct 20. 2019

[서평] 그 여자의 거짓말

대책 없는 무기력함, 그 우울한 진실

소설의 첫 문장: 여자는 책을 읽고 있었다.


여자는 책을, 특히 새 책을 좋아했다. 다만 딱딱한 양장본으로 된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도서관에서 양장본 책을 꺼내 들어 읽고 있다. 마흔두 살에 자살한 작가의 유작이어서일까. 두서없이 궤변을 늘어놓은, 진짜 거짓말 같은 말을 묶어놓은 작가의 소설을 여자는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여자는 무기력한, 더 무기력해지고 싶은 인간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열정적이고 솔직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보이는 여자와 여자가 아는 자기 자신과의 괴리가 지겨울 때마다 여자는 전국의 도서관을 돌아다녔다.


뜬금없이 여자는 자살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똥에 대한 잠언집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글을 쓰는 일 역시 간절하게 원하는 일도 아니었다. 무엇인가에, 그 무엇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위해 간절하게 사는 것은 여자에게 피곤한 일이었다.


자살한 작가의 양장본을 대출한 도서관은 바닷가 근처였다. 도서관에서 빈둥거리다 책을 반납하고 나오니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여자는 홀린 듯 바닷가로 향했다. 밤의 어둠에 이끌려 여자는 계속 바다 쪽으로 걸어 나갔다. 여자는 언젠가 한 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파도 근처에 놀았는데 자기가 물에 빠진 이유는 자신이 홀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자는 지금 어둠의 바다로 향하고 있다.


어릴 적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기댈 존재도 없는 시절을 보냈던 여자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 밖에 없었다. 작가의 꿈이 부모의 강요로 무너지면서도 책을 잊지 못한다. 그 책에 이끌려 도서관을 배회하고, 바닷가 도서관을 나와 어둠의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여자. 하지만 정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여자.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이윽고 그녀는 바닷가 모래 위에 쭈그려 앉았다.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요도에 힘을 풀었다. 여자의 오줌은 "시원하게 땅을 때렸고, 모래 위를 적시며 깊고 우직한 구멍을 내었다."



소설은 한 여자의 '무기력'을 담아내고 있다. 간절하게 살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궤변으로 가득한 무기력한 삶. 어릴 적부터 익힌 무기력한 삶의 틀을 깨기 위해 생각해낸 것은 자살이었다. 양장본 작가의 자살을 모방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살에 대한 간절함 역시 여자의 무기력을 넘진 못했다. 자살이란 것도 무기력한 여자에겐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여자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 바닷가 모래 위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눈다. 바닷가 방뇨는 무기력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공허함 가운데 뜨거움으로 시원하게" 자신의 무기력한 삶에 깊고 우직한 구멍을 내는 소박한 의식이었다.


현대인의 무기력, 그 무기력에 지쳐 자살을 시도해보지만 그 자살조차 간절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 죽음을 막기도 하지만, 죽음에 대한 간절함마저 사치인 무기력한 삶이 죽음을 막기도 한다. 궤변과 모순이 만들어내는 공허함 때문일까. 바닷가에서 바지를 내리고 방뇨를 하는 것만으로도 여자의 심장은 "불끈불끈 요동"친다.


작가 오후의 소설, <그 여자의 거짓말>은 무기력의 원초적 본질을 고민한 소설이다. 보통 무기력의 끝이 자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뛰어넘어 '무기력'이란 그렇게 극단의 선택마저 불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무기력의 '진실'이다. 201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그 여자의 거짓말>에 대한 심사평은 이렇게 평한다. "사유의 깊이와 심리적 진술성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인간 내면의 진실로 나아가는 도정이 섬세하게 펼쳐지고 있음으로 하여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대한 독후의 감은 께름칙하다. 감정의 심연을 거의 언제나 '우울함'으로 몰고 가는 한국 소설의 편향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치열한 논리와 스펙터클한 서사로 삶의 동학을 적극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내면의 내면으로, 안에서 안으로만 빠져드는 답답함. 이 답답함이 과연 현대인의 무기력을 어떻게 어루만지고 치유할지 의문이다.


삶의 공허에 지친 이가 고작 할 수 있는 게 바닷가에서 오줌을 싸는 것이라니.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서 심장이 요동쳤던 경험이 무기력한 삶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욱더 가열하게 미쳐보고 싶었던" 여자의 선택이 자살이었다면 뻔하지만 덜 우울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무기력의 끝을 보려 노력했지만 그 무기력의 심연에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인간의 '간절함'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물론 작가는 소설 속에서 무기력의 틀을 벗어나는 여자의 심리적 노력을 전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바닷가의 광막한 어둠을 바라보며 "문득 이곳은 어쩌면 여자가 알던 지구가 아니라 온통 어둠으로만 점철된 낯선 행성인지도 모"른다는 여자의 생각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도 있다. 무기력이란 어둠이 지구를 덮고 있는 것 같지만 '낯선' 삶의 예외일 수도 있다는 뜻을 전하려 했던 것일까. 누덕누덕한 마음을 책을 덮으며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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