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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Oct 27. 2019

가을 단맛

가을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어느덧 가을의 끝이다. 2019년 나의 가을을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다.


1. 요하네스 브람스(1933~1897)의 교향곡 3번 F장조, 작품번호 90번

친한 후배가 건네준 공짜 티켓 덕분에 무려 R석에서 감상한 <2019 제36회 대한민국 국제음악제>.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듣게 된 브람스의 교향곡. 조금은 귀에 익은 3악장이 좋았다. 현장에서 구입한 프로그램북은 제3악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3악장 Poco allegretto 조금 빠르게: 애수 어린 아름다운 선율로 유명세를 탄 3악장은 브람스가 선호하는 낮고 풍부한 소리로 첼로가 주제 선율을 노래하며 시작된다. 통상적인 19세기 교향곡 3악장이 베토벤 방식의 빠른 스케르초 형식을 취했던 것에 반해 브람스는 중간 빠르기 정도의 강한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독창적인 3악장을 창조해낸 점이 주목할 만하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1883년, 그의 나이 50세 여름에 작곡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중년 남성의 정서를 차분하지만 웅장하게 담아내고 있다.

https://youtu.be/1trE3ms3AGo

2. 감기약

감기에 걸렸다기보다는 감기에 걸쳐 있는 것 같은 애매 나른한 몸 상태가 일주일 정도 이어졌다. 결국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코가 좀 뚫린다. 아침, 점심, 저녁에 복용하는 약 성분이 조금씩 달랐는데 유난히 저녁에 먹는 약을 먹으면 졸렸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거의 언제나 괴로운 일이다. 특히 건강은 더 그렇다.


3.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이 남긴 그리움을 안고 살던 60대 외과 의사가 캄보디아 의료활동 중에 얻게 된 신비의 알약으로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 사랑했던 여인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를 바꾸는 위험을 무릅쓰는 주인공과 그로 인해 다시 재구성되는 개인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문을 곱씹어보는 맛은 덜하지만 다이내믹한 플롯 전개가 그럴듯하다.


4.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심야 영화로 본, 오랜만에 본 로맨스 영화. 사랑의 상처를 각자의 방식 - 이를테면, 술 마시기 또는 담담하게 버텨내기 - 으로 견디던 남녀 주인공의 담담한 연애사를 다뤘다. 십수 년 전 <연애의 목적>이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끝났던 로맨스 영화의 계보를 잇는 영화로 평가되진 않을까. 물론 개인적 생각이다.


5. 아인슈페너(Einspanner)

얼마 전 알게 된 동갑내기 지인과 커피 한 잔 하러 들른 카페 로맨티카. 지인이 추천한 커피, 아인슈페너. 아이스 아메리카노 위에 부드러운 우유크림을 얹고 소금을 살짝 뿌린 맛이 일품이다.


6. 강남역에서 역삼역을 거쳐 선릉역으로 이어지는 거리

가을의 주말 밤에 나선 도심 나들이. 오랜만에 거닐게 된 강남 밤거리엔 스타벅스 커피점이 많았다. 강남역 12번 출구에서 선릉역까지 걸으며 몇 개의 스타벅스가 있는지 세어 보았다. 대략 7개 정도였나. 스타벅스는 이제,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 밤거리 풍경을 촘촘하게 메우고 있다.

7. 열탄불고기

이런저런 일들을 마치니 자정이 넘어 허기에 찾아 간 새마을식당. 친구는 멸치국수를 시켰고, 나는 열탄불고기를 시켰다. 유부가 듬뿍 담긴 멸치국수와 불맛 나는 열탄불고기를 나눠 먹었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야식을 즐겼고 마지막엔 콜라를 시켰다. 펩시콜라였다. 가끔은 코카콜라가 아닌 펩시콜라도 맛있을 때가 있다. 서로 "내가 낼게"라고 말했지만 결국 친구가 냈다. 내가 다음에 저녁을 살 것이기에 기꺼이 그래라 했다. 친한 친구는 이래서 좋다. 차를 가져온 나는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금요일 밤이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너그러워지는 요일이었다.


8. 올더스 하딩의 노래 <the barrel>

오늘 밤 느끼는 가을 맛이 대충 이 노래 같다. 잔잔하지만 경쾌한 피아노 선율 위에 포크 리듬의 기타와 가벼운 드럼 비트를 제법 촘촘하게 엮은 노래다. 서정적 멜로디와는 달리 조금은 기괴한 뮤직 비디오가 주는 어색함이 어딘가 또 신선하다. 10월 가을의 생활과 기분과 컨디션과 정서를 종합하고 있는 것 같아 반복해서 듣고 있다.

https://youtu.be/QyZeJr5ppm8

가을이 주는 즐거움은 정서의 교차다. 아침의 쌀쌀한 바람, 낮의 포근한 햇볕, 밤의 설익은 추위가 교차하는 하루하루에 느끼는 기분은 오묘해서 설명이 불가하다. 그래서 좀 우울하고, 그래서 즐겁기도 한, 한철 가을의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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