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시지요?
어느 식사 자리에서 병원 이야기가 나왔다.
슬슬 노화의 신호가 몸의 통증으로도 오는 나이, 병과 병원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다.
자리에 있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건, 아픈데 의사는 아픈 걸 몰라준다고, 병명도 없다고, 그냥 다 그렇다고 성의없이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러지 않았던 예외의 의사들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크게 넘어져 무릎에 깊은 상처가 났다. 겉은 거의 아물었는데도 어딘가에 조금만 부딪혀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아파서 근처 외과에 갔더니 젊은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게 정말 아프죠. 당사자만 알아요. 이렇게 아픈 거."
기억력이 굉장히 안 좋은데도 그때 그 의사가 해 준 공감의 말투는 아직도 기억난다. 환자만 아픈 걸 안다면서, 어떻게 알지? 자기도 똑같이 아파본 걸까? 이렇게 아픈 환자를 많이 봤나봐. 의사의 표정과 말투는 투명밴드가 되어 무릎에 딱 붙어버렸다. 아플 때마다 그 의사의 표정과 말투가 떠오르면서 왠지 위로가 되었다.
다 커서는 꽤 오래 약을 먹어야 할 심난한 병에 걸렸다. 19세기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우울해졌다. 예약을 잡아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받으러 들어간 병실에서 중년의 여의사가 결과를 통보하며 마주앉은 내 무릎에 손을 얹었다. 따스한 체온과 함께 건넨 말의 주어는 '우리'였다.
"우리, 약 잘 먹어봐요."
그 말이 긴 투약 기간 동안 지팡이가 되어줬다. 매일 먹는 약은 가끔 '우리'가 삼키는 것 같았다. 이 선생님이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병원에서 오늘의 제목인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몇 해 전 눈이 심하게 아팠다. 뭔가가 안구를 안에서 혹은 밖으로 힘껏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동네 안과를 갔더니 안압이며 기타 등등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그저 안구건조가 좀 있다며 일회용 누액을 처방해 주었다. 그걸로는 통증이 전혀 가라앉지 않아서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큰 병원을 찾아갔지만 똑같은 말과 처방전을 줬고, 이걸로 전혀 완화되질 않는다고 말하니 대학병원을 가라고 진료 의뢰서를 써줬다.
대학병원까지 가야 하나 하며 온라인 검색을 하다가 할아버지 선생님을 만났다.
계획도시의 흔한 상가 안, 마사지 샵과 낮동안 문이 닫힌 바와 논술학원이 섞여 있는 건물에 병원이 있었다. 보통 안과에는 접수대와 각종 기계 앞에 간호사들이 여럿 있는데, 여긴 접수대에 딱 한 명. 간호사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접수를 받았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로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다.
진료실 안은 학교 과학실처럼 넓었고 오래되어 보이는 구식 기계들이 죽 늘어놓아져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의사는 나를 진찰대에 앉히고 큰 목소리로 증상을 물으시며 책상 옆 세면대에서 손을 빡빡! 닦았다. 벽에 걸린 의사면허증(?) 취득일은 내가 태어난 해 즈음이었고, 해외 연수를 가서 찍은 듯한 사진 속 배경은 옛날 미국 흑백 영화 배경 그대로였다.
눈에 약을 넣어 살피고 다른 병원과는 사뭇 다른 구식(?) 기계로 직접 꼼꼼히 내 눈을 들여다 보신 의사는 외치듯이 내 병에 이름을 붙여주셨다.
"안정피로야. 안정피로!"
아픔이 가신 것도 아닌데 병명을 들으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이 아픔에도 병명이 있었구나. 규정지어진다는 건 이럴 땐 좋다. 그럼 대응 방법이 있으니까. 처방해 주신 약도 효과가 좋았다. 나는 그 구식 기계들과 과학실 같은 분위기와 깔끔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과 무표정한 간호사 선생님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갈 때마다 흘러나오는 '넬' 음악은 또 어떻고.
그 뒤로 몇 번 더 진료하며 의사 선생님은 나이를 묻고, 자녀를 묻고, 호통과 조언을 덧붙이셨다.
"나이도 젊은데.. 애도 이렇게 어린데 벌써 노안이 오면 어떡해!"(노안이 왔다ㅜㅜ )
"커피 마시지 말고 등산해요! 초록을 많이 봐야해!"
"등산할 땐 위험하니까 혼자 하지 말고!"
(존대를 하셨을 수도 있다. 이번엔 어미까지 기억을 못하겠다.)
우연히 동네 교회에서 마주쳐 인사를 드리는 일도 있었다. 병원에서는 그리 꼿꼿하던 분이 부인과 함께 교회에서 마주치니 "이 교회 다녀요? 난 끌려왔어~"하며 웃으셨다.
어쩌다가 연하장을 이곳저곳에 보내게 된 어느 연말, 선생님 병원에도 한 통을 보냈다. '넬' 음악을 틀어주시는 간호사 선생님께 감사의 말도 함께. 읽으셨는지 안 읽으셨는지, 그 뒤론 가보지 않아 모르겠다.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간판을 확인하고, 간판이 보일 때마다 반성한다. 아.. 스마트폰 오래 보면 안되는데. 커피 마시면 안되는데. 그리고 아플 때 믿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아직 남아 있다는 데 안심한다.
줄줄이 대기하는 환자들, 짧으면 2~3분이고 길어도 5분이 안될 짧은 진료시간 속에서 환자의 증상과 함께 감정까지, 때로는 환자가 놓인 주변 상황까지 살펴달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일하는 시간 내내 아픈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만 듣는다는 건 고단한 일이다. 내 기억 속 의사들의 공감과 위로, 호통과 조언도 어쩌다 그날, 어쩌다 한 번 건넨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는 그런 짧은 말에서도 위안과 치유를 느낀다.
요즘 눈이 점점 침침해지는데 호호백발 선생님께 가서 정신 좀 차리고 와야겠다. '노안'이라는 진단명을 정식으로 받아드는 게 무서워 피하고 있었는데...
빡빡 씻은 깨끗한 손에 진료도 받고, 넬 음악도 들으러 함 가겠습니다. 의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