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이를 낳고 기르면 어떻게 교육을 시킬까 많은 고민을 한다. 나도 그랬고, 아마 많은 부모님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교육이라고 해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가르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교육방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나는 아이에게 지긋지긋한 공부는 시키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할 거야" 혹은 " 아이가 건강하고 예의 바르기만 하면 되지" 등등 각 가정만의 저마다의 교육방침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생일이 단 몇 개월 차이가 난다거나, 한글을 조금이라도 읽기 시작하면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교육방침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학습에 몰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주변환경이나 아이의 상황은 전혀 보지 않고 그저 놀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것이든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학습의 스피드나 습득력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옛날부터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스승에 대한 존중심과 존경심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스승으로서의 <교만>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면서 많은 것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개선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란 권위가 생기면, 혹은 나이를 먹으면 올챙이 적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선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살피기보다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평준화시켜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서 어긋나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러한 틀림을 올바름으로 바꾸기 위해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인 폭력도 사용해 왔다. 그래도 되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었고,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아이의 편이 되어야 할 부모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생도 자신의 방식이 옳지 않음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많이 바뀌었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커온 이제는 선생님이 된 사람들은 그동안의 방식들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아이마다 성격이, 좋아하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핀잔보다는 칭찬으로 아이를 다루도록 선생님도 교육을 받는다. 모두가 처음부터 잘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개선되었고, 아직도 개선되고 있다.
학부모의 경우 옛날에는 먹고살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에 자녀를 돌볼 시간적 여유와 지식이 없었다. 자녀가 울고 화를 내면 윽박지르는 것이 전부였던 시간이었다. 그들도 그렇게 배워왔고, 그것이 당연했다. 부모님의 말에 대들다가는 크게 혼났고, 부모님은 당연히 존중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낳아주고 길러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사정도 좋아졌고, 아이가 귀한 시대가 되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그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신의 자녀에게 아낌없이 쏟아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녀에게 말을 얹는 것을 불쾌해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물론, 자녀는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자녀 역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지식은 갖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만 분분할 뿐 아직 그렇다 할 공통적인 의식은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이는 어떨까?
예전 아이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왔다. 그 가르침의 방법이 어찌 되었든,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만큼 부모에 대한 효심이나 스승에 대한 존중심, 나이 많은 어른에 대한 예의는 기본으로 깔려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것은 그저 '옛날사람' '꼰대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이유는 부모의 너무나 과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모의 과한 사랑은 아이의 행동에 한계점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를 때리는 아이에 대한 뉴스는 이제 그리 신선하지도 않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어른이나 선생에 대해 그 불쾌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아이들도 이제 반에서도 여럿 눈에 띈다.
아이들은 습득력이 정말 빠르다. 스펀지와 같다는 표현이 좀 더 느린 듯 보일 정도로 정말 빠르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과 동영상이 발달된 시기에는 더욱 빨라졌다. 아기들도 스마트폰을 다룰 줄 안다고 하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부모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것은 따라도 되고 어떤 것은 따라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는 정말 행동을 주의해야 하지만, 부모들은 그것을 망각한다. '아이들도 이런 행동은 따라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들도 아이들은 어김없이 따라 한다.
별 뜻 없이 "너네 선생님은 왜 그런다니?"라는 말을 내뱉는다면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은 자신의 부모님 밑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학습지 교사로 있을 적에도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이른다요?"
이르면 어떻게 되냐고..
물론 나는 조금 거꾸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응, 일러줘.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면 학습지 끊어주지요~ 엄마가 선생님 혼내주실 거예요~"
"그래, 끊으면 누가 좋은 걸까?"
"내가 좋지요~ 공부 안 해도 되니까~"
"아닐걸? 엄마는 다른 선생님을 구해 주실 거야."
어쩠던,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참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교사가 죽는 일이 있었다.
그 후로 SNS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있었던 일들을 올리곤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도 하고 가슴도 아프다.
최근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다.
<선생은 학생의 주장이나 아이디어를 기꺼이 꺼내 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선생님이 학생을 이끌어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교육과는 다른 방향으로 학생 편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결과를 학생과 함께 진행해 보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일단 어려운 것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르치려는 선생님과 가르침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 거기에 선생님에 대한 존중심과 존경심도 없다.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정도 선이라면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한데, 선생님이 선생님으로서의 권위를 이럴 때 내세우면 된다.
그렇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부모 때문이다.
부모님이 선생님과 함께 아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아이에게 부모가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아이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협조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