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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Aug 24. 2023

다시 태어난 다면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

루틴을 지키면서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에게 배워요.

 아침부터 바쁜 일상을 지내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이른바 고등어라고 불리는 검은 등줄기를 자랑하는 온이와 검정털 위로 하얀 장화와 우유를 여기저기 묻혀 온 것 같은 흑미다.

  


 이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모습은 매우 부러운 게 베개가 필요 없고 장소가 어디든 내가 무엇을 하든 그저 눈을 끔벅끔벅 감다가 결국은 잠이 든다. 살짝 아이들의 눈 부분 귀부분에 손을 갖다 대 본다. 움찔하는 귀 끝과 살짝 눈을 연 아이들... 그러나 이내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어제저녁에는 비가 무섭게 왔다.

요즘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진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우박이라고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밖을 내다보게 될 정도이다.


 그런데 고양이들에게도 빗소리는 꽤 민감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흑미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온이가 비가 온다며 나를 창가로 이끌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1층이고 아파트 내에서도 안쪽에 위치한 곳으로 집 앞은 작은 쉼터와 같은 공간이 있다. 평상이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그런 공간은 정원이 없는 우리 집으로서는 나만의 개인 정원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공간이 보이는 앞쪽 베란다 쪽에 온이의 캣타워를 설치해 주고 온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곳에서는 집 앞을 지나는 다른 고양이나 강아지와 함께 산책 중인 할머니,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들이 보이는데 온이 역시 그 공간이 마음에 드는지 아침에 눈을 떠서 거실을 나가보면 온이가 캣타워에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가 예고되었던 날. 나는 거실이 아닌 안쪽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냐아아 아옹... 냐옹"


온이의 평소와는 다른 소리를 듣고 의아하게 생각이 되어 나가 보니 열려있는 베란다 창 밖으로 비가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예보가 잘 맞지 않는 날도 있고, 오는 시간이 안 맞는 날도 있기에 창밖구경을 좋아하는 온이를 위해 일부러 창문을 열어두곤 했는데, 세게 들이치는 빗방울이 거슬렸던 모양인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온이의 모습을 보고는 아직 나도 온이의 모든 모습을 본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온이는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변화들에 생각보다 크게 반응을 했다.



 어젯밤에도 비가 많이 쏟아졌다. 그냥 부슬부슬 내렸더라면 온이도 괜찮았을 텐데.. 방안에 있던 내게도 빗소리를 꽤 크게 들렸다. 그러다 보니 닫혀 있는 방문 밖으로 온이가 계속 문을 긁어댔다.


 온이는 가구나 벽을 긁는 아이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그런 것들을 손톱으로 벅벅 긁는 통에 집에 있는 것들이 못쓰게 된다고 하는데 어려서부터 스크래쳐를 사용한 탓인지 온이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런 온이가 문을 긁어 대니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다.


 결국 온이에게 문을 열어주고 온이와 함께 잠을 청했지만, 안방에서도 빗소리를 무서웠던지 밤을 꼴딱 새우면서 나를 깨웠다. 나는 온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주며 꾸벅꾸벅 졸다 다시 쓰다듬어 주다 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루틴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평소보다 15분 늦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아침 운동을 다녀와서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 주지만 빗소리 때문에 못 잤을 아이들을 위해 주방에서 서서 아이들의 그릇을 씻어 습식사료를 덜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은 주방으로 모여들었다. 온이와 흑미는 내가 주방에서 준비하는 동안 눈을 동글동글하게, 초롱 초롱하게 뜨고 쳐다본다. 마치 '내 거 준비해 주는 거지? 어떻게 알았어? 나 배고픈거??'하고 말하는 것 같다.


 


온이는 하얀 그릇, 흑미는 회색 그릇에 습식사료를 반포씩 넣어서 준다. 입이 짧은 온이에게 맞춘 양이지만 아직 어린 흑미에게도 딱 양이 적당한지 먹고 나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처음에는 서로 바꿔 먹기도 하고, 흑미가 온이밥을 빼앗아 먹고 빼앗긴 온이는 가만히 있어서 다시 줘야 하고 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밥을 잘 찾아간다.


 내가 챙겨주는 밥을 잘 먹는 이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매우 뿌듯하다. 다행스럽게도 두 아이다 물도 잘 먹는다.


 아이들이 잘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운동을 다녀와 씻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요즘 건강식으로 식단을 바꾼 나는 양배추와 가지를 삶아서 닭가슴살을 넣어 싸 먹곤 한다. 이런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매일 같은 일을 하려니 쉽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내가 밥을 챙겨주면 잘 먹는 온이와 흑미, 그리고 자신들 만의 루틴으로 함께 뛰어다니고, 싸우고, 그러다가도 서로 그루밍을 해 주고, 그리고 낮잠을 자고 하는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일을 하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온이와 흑미가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이나, 영양제, 스크래처 등 고양이 용품을 파는 앱을 열어 아이들에게 사주게 된다. 분명 나도 엄마가 그런 마음으로 키워줬겠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들을 위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은근히 부럽게 생각이 되는 것은 멈출 수가 없다.


 나도 낮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다. 나도 우다다 뛰어다니고 그 모습을 보고 귀여워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나도 동생 흑미가 노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하고 싶다...


 내 성격이 온이와 비슷한 부분이 더 많기에 고양이 중에서도 온이가 부럽다.

 다음에 태어나면 온이와 같은 고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면 하루 종일 내가 정한 루틴대로 활동을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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