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Dec 06. 2023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의 고양이

보잘 것 없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주변에는 꼭 사랑 스러운 것이 있다


  아침에 외출 준비를 하려는데 귀여운 뒤통수가 보인다.

 이제는 익숙한 우리 온이의 뒤통수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슬며시 책장에 숨어 훔쳐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눈치 챈 온이가 쳐다봐 준다. 자주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이제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다. 무심히 다른 곳을 보다가 내가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온이도 나늘 계속 바라봐 준다. 


 이렇게 한참을 눈싸움?하고 있다가 보면 이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뜨면 내 고양이들이 나의 아침을 기다리고, 소리를 내어 밥을 재촉한다. 이 아이들에게서는 내가 남이 아니고 이제는 가족인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나에게 손을 내 밀며 만져 달라고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지만, 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우리가 이렇게 당연하게 함께 있어도 될까?



  가끔 듣는 소리가 있다. 


"야, 타인이 아무리 잘 해줘도 가족보다는 못한 법이야.  가족이 무조건 우선되어야해. "


그런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이 40이 넘어서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나에게 가스라이팅이 되어왔던 것같다. 

아무리 위로를 받지 못해도, 타인에게 마음을 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가족에게도 나의 마음을 토로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타인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박혀 있었으니까. 


 원래도 동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부모님과 따로 살기 전까지는 여건상 강아지 밖에 기를 수 없었다. 따로 나와 살면서 우연한 기회에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나는 이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들의 깊은 눈은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위로가 되었다. 이 아이들은 나와 피가 섞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타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가족만큼 나를, 또는 내가 그를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과 시간을 주면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그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기도 했다. 젊었을 때보다 나이를 들어서 더더욱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도 내 나이쯤 되면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가족에게서 위로를 받지 못해 다른 어딘가에서 위로를 찾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물론 내가 너무나 아프고 힘들때 가족이 가장 가까이 있어서 나를 보살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다. 친구도 나를 위로 해 주고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내 주기도 한다. 내가 너무나 힘들어서 울고 있을 때에도 내 옆을 지켜준 것은 친구 였고, 우리집의 고양이들이었다.  나의 안색을 살펴주고, 내가 주는 음식을 잘 먹어준다. 이 정도면 피로 연결된 가족보다 나은 것 아닌가.. 


 오래도록 나를 가스라이팅 해 왔던 이 말이 온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같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위로를 주고 싶어하고 말을 조심하고, 매너를 지키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내비쳐 주는 관계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족'이라는 타이틀 뒤에서 잘못을 드러내고 아픈 상처를 후비고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이 마치 가족만이 해 줄 수 있는 참 조언인것 마냥 떠들어 내는 그런 가족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런 가정 속에서 태어났고, 그러한 행동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도 자라가면서 '내 가족'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아마도 그러한 실수들은 했을 것이다. 여러번 말을 삼킨다고 생각하면서도 칼로 찌르는 듯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오늘 또 다짐한다. 완벽할 수 없고,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시간들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고양이들은 좀 대하기 편한 것 같다. 물론 고양이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지만, 설사 내가 그랬다 하더라도 이 아이들의 깊은 눈과 귀여운 몸짓은 나를 용서하고 있고, 다시 노력할 기회를 주는 듯 보여서 오늘도 이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이런 고양이가 있지만, 꼭 고양이나 동물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주변의 많은 것들 중에 사랑스러운 것들을 찾아보자. 보잘것 없는 세상이지만 내가 사랑을 줄 만한 것들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반드시 있다. 꼭 집안이나 가족에게서만이 아니라. 뭐 집안이나 가족에게서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가. 어차피 사람은 성인이 되면 그동안 몸담았던 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도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