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정 작가님의 에세이 "나의 종이들"을 소개합니다.
세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이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매일매일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요즘 시기에
더더욱 지난 시절 집중하면서 보았던 만화책이나, 흙으로 하는 소꿉놀이, 아이들과 함께 땅에 분필로 그려 뛰놀던 좁은 마당..
그런 것이 그립게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어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갖고 싶은 것은 작은 문방구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급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던 마루인형이었던 어린 시절..
지금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은 그 인형을 손에 넣기 위해 뜻 모를 알파벳으로 나열된 영어 단어를 종이의 한 귀퉁이가 찢어져라고 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종이는 이렇게 우리가 아주 어릴 적부터 가까이 있는 우리의 친구 중 하나입니다. 외롭고 슬플 때에도 종이 뭉텅이에 나의 감정을 얼마나 열심히 쓰고 열쇠로 꼭꼭 잠가 두었는지 모릅니다.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그런 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끄집어내어 주셨네요.
학교를 입학했지만 한글을 떼지 못했던 작가님이 생각을 시로 그리고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한글은 떼고"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 "뒤쳐진다"보다는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좀 더 갖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한글이든 그림이든 춤이든 아이가 가지고 있는 기량으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세이 한편 한편 제가 만났던 아이들과 겹쳐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글들이 가득했습니다.
<왼손잡이의 사회화>를 읽으면서는 "왼손잡이"이기에 고민이 많았던 한 아이와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왼손이 자유로운 그 아이의 자유로운 생각을 위해서 "오른손"으로 글을 쓰도록 가르치지 않았던 제게 많은 분들이 의문을 품으셨습니다. 지금은 벌써 중학생으로 장래 "국제 변호사"를 꿈꾸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에부터 빠르게 학교에 적응하고,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 사회적인 관례를 너무 고집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 속에는 아직은 존재하지만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멸종 위기의 문화들이 들어있습니다. 제목 속의 "종이"가 그렇고, 작은 문방구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너무나도 예쁜 미미인형이 그러하며, 손으로 그리는 그림들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사람을 사람으로서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비즈니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채우기 위해서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적인 감성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주변의 것들을 아날로그로 전부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절히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어 마음을 다독이며 나아간다면 마음의 안정과 만족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한 하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표지보다 내용이 좀 더 아기자기하고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책 <나의 종이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