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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고양이와 함께 맞이하는 일

누군가 나의 아침을 기다려 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혼자 눈을 뜨게 된 것이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일본 유학시절.. 그 젊었던 혈기에 혼자서 잠을 자고 혼자서 눈을 뜨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하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매일이 설레었고, 매일이 즐거웠다. 혼자 타국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름 건강한 음식을 입에 넣어가며 스스로 번 작은 돈에 기쁨을 느끼며 그렇게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 40을 넘겨 중순을 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 혼자 잠을 자고 혼자 눈을 뜨는 일의 적막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나는 혼자구나.. 하는 생각에 시달리며 자존감이 땅바닥에 붙어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꾹꾹 꾹꾹' "꾸루루룩, 꾸룩꾸룩 키잉"


아침 5시면 내 가슴팍에 작은 온기가 나를 깨운다.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우리 집에 온 둘째 흑미다. 이 아이는 내가 엄마라고 생각하는 듯, 자신의 어리광을 한껏 부린다.



이제는 2살이 넘어 고양이 나이로는 어엿한 어른이지만?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막내티가 풀풀 나는 흑미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매번 나를 아침마다 깨워준다.


우울감을 느끼면서 지낸 지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다 보니 이제는 훌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죽어지지 않으니까.

또 나에게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말썽꾸러기 흑미와 든든한 온이가 나의 아침과 귀가, 취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잠을 자기 시작하는 10시를 넘겨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계속 말썽을 부린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거실을 자기들한테 양보하라는 것인지...

그러고는 내가 침대에 들어가면 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거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 꺼내놓은 티피나 책상 아래의 스크래처, 코타츠 안. 그날그날 좋아하는 장소는 다르다. 그래도 온 집안에 어둠이 내리면 자리를 잡고 조용히 나의 잠을 유도한다.


얼마 전부터 나는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기 전과 아침, 그리고 외출전과 귀가 시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해 주기 시작했다. 원래 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와서 인사를 구걸하듯 내 다리사이를 왔다 갔다 해서 인사를 해 주었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아이들을 찾고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져주며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했다.



온이와 흑미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반려묘들이지만 우울감이 나를 덮쳐올 때는 이들은 그저 집에 있는 움직이는 인형과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슬퍼서 울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무기력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아침에 일부러 나를 일어나라고 냐옹거리며 꾹꾹이를 시전 하는 등 어떻게든 움직이도록 독려했다. 이들도 나의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싱크대 앞에 서 있으면 밥은 안 주고 뭐 하냐는 듯 제 밥그릇 앞에서 나를 진지하게 쳐다보는 온이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또 흑미와 술래잡기를 할 때에도 그렇게 진지한 얼굴이 없다. 절대 잡히면 안 된다는 듯, 거실의 이 끝에서 저 끝을 사정없이 뛰어다닌다. 그렇게 한 참을 오락가락하더니 에너지가 다 되었는지 충전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소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온이의 모습과 아직 사용하지 못한 에너지를 캣휠에 풀고 있는 흑미의 모습은 내가 이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생활을 하며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2년 전에 중단했던 아침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새벽 5시 30분의 하늘은 밝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진으로 찍은 하늘은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서서히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제보다 조금은 나아진 다를 꿈 꾸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침을 고양이들과 맞이한다는 것은 부지런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이 녀석들은 나보다 일찍 일어난다. 아님 잠을 안자나..?

내가 집에 오래도록 있는 날이면 오히려 나의 존재를 귀찮아하듯 방해물 취급을 하기도 한다. 나의 외출시간은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기라도 한 듯, 내가 함께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나를 살피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디까지나 나의 시점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 내가 외출해서 없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시간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집에 있는 것 자체가 그들의 충전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나를 밖으로 떠미는 듯한 행동들이 섭섭하지만은 않다.

어쩠던 힘을 내 보아야지.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해 주는... 고양이들이 있으니까.

아침부터 신나게..투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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