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이 엄습한 초등학교 반복 공부의 결과
한 과목을 반복해서 공부시키지 않아야 하는 이유
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Oct 19. 2022
학습지 선생을 하다 보면 아이가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올라갈 때까지 보게 되거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학습지 선생님이 아이의 가장 중요한 시기중 일부를 아이의 엄마와 함께 육아를 하는 셈이 된다.
당시 나의 지론은 "공부는 짧고 굵게 하고 많이 놀아라"였다. 내가 가르치는 대상의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볼 때, 아이들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놓고 밖에서 놀게 할 수없는데, 그 이유는 학교 교과서의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공부한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아도 힘들다.. )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수학 공부를 하면서 몇 시간을 머리를 쥐며 풀어도 매번 답이 다르게 나오던 문제가 있었는데, 그날 포기하고 잠을 자다가 갑자기 "유레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쉬운 문제 풀이 방법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또, 열심히 공부한다고 몇 시간을 앉아 공부했던 것들은 시험과 동시에 없어졌지만 쉬는 시간에 단 5분 정도 읽은 교과서의 내용이 머리에 박힌 채 빠져나오지 않았던 경험도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어릴 적에는 공부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쳐본 결과 나의 그런 생각이 옳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학습지의 경우 과목당 길어봐야 10분 정도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 10분도 지난주 틀린 문제를 확인해 주는 데 5분 이번 주 공부 요점 5분 정도의 시간으로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점을 짚어준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이 어려운 단원을 나에게 주어진 5분 안에 전달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야 했다.
구구단은 아이들이 2학년 1학기 6단원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 세기를 통해서 구구단의 원리를 가르치는 부분이 나온다. 나는 구구단을 설명할 때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묶어 세기를 통해 설명을 하는데, 그보다도 전에 먼저 "곱셈은 같은 수를 여러 번 더하는 귀찮은 과정을 짧고 쉽게 만들어주는 거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곱셈은 덧셈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인지 시켜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구단을 먼저 외우면 지금 당장은 외우는데 시간이 걸릴지라도, 곱셈이 중요한 3학년 이후의 문제들을 훨씬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구구단 말고도 국어에서도 아이들이 지금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는 문제가 다소 어렵더라도 조금만 공부하면 따라갈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는 아이들이 단 몇 분이라도 쉬운 문제는 버리고 어려운 문제의 열쇠를 익히는 공부를 하도록 말을 한다. 그리고 요즘의 학습지에서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만이 반복되어 나오는 곳도 있고, 선생님에 따라 쉬운 부분은 빼고 아이가 중요하게 풀어야 하는 부분만을 풀어보도록 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평소보다 적어진 양의 문제를 풀고 나가서 놀아도 시험 점수는 좋다!
그런데 쉬워서 풀지 않은 문제들을 아까워하는 엄마들이 계신다. (물론 나도 이해한다.) 내가 설득해도 자신의 자녀는 시간이 많다며 굳이 시키신다. 거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같은 과목의 문제집을 시중에서 사서 똑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리는 부모님도 계셨다.
최대한 아이의 편에 서서 엄마를 말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말고, 굳이 같은 과목의 문제집을 풀리고 싶으면 내가 별 표시해 둔 것과 비슷한 문제 만을 풀리고 쉬운 것은 그냥 버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그림을 그리거나 멍 때려도 좋으니 여유로운 시간을 아이에게 줄 것을 요청한다.
요즘 아이들은 멍 때리는 시간이 없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학교에서 싸운 친구에 대해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자신이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 즐거운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생각해 볼 만한 여유도 없는 것이다.
엄마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국어와 수학에 나오는 서술형을 좀 잘 풀 수 있게 해 주세요"
국어에서 아이들이 빈 공간으로 남기는 부분은 주로 이런 문제가 나온다
"00와 비슷한 나의 경험을 써보라"
"00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라"
아이들은 지문을 읽고 그 비슷한 경험과, 그것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생각을 써야 하지만 잘 적어내지 못한다. 물어보아도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꼬집어 물어보면 "그런 것도 돼요?"하고 되려 물어본다.
자신이 겪은 경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어른들은 일부러라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은 매우 불안한데,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반복된 공부보다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고 함께 마주 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앞에서 살짝 이야기했던 아이는 공부를 매우 잘하던 아이 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아이가 한숨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선생님, 글을 쓰고 시도 쓰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 학교 국어 문제집과 수학 문제집을 사서 풀고 있는데 왜 같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친구랑도 놀고 싶은데.. 그렇다고 엄마가 학습지를 그만두게 해 주시지도 않지만 그만둔대도, 선생님의 설명 없이 문제를 풀 수도 없어요. 너무 시간이 없어요."
깜짝 놀란 것은 내가 그 집에 갈 때에는 그런 시중 문제집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러는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주는 문제집이 문제양이 적었던 것도 아닌데도 그 엄마는 무엇인가 불안해서 아이에게 같은 과목의 문제집을 내밀었던 것이다. (점수가 중요한 것일 수도..)
그랬던 그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고 나도 그 지역을 그만두게 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설득을 해도 설득당해주지 않으니,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고학년이 되면서 결국은 공부에서 손을 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습지 선생은 지역이나 아파트를 담당하기 때문에 건너 건너 다~ 아는 아이다. 공부에 센스도 있어서 짧게 공부해도 곧잘 했던 그 아이는 이젠 공부를 못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 소식만으로도 그 아이의 엄마가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손도 델 수가 없을 정도로 고집스럽고 이기적이 되었다는 그 아이가 얼마나 착했고 예의 발랐고 순수했는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물론, 지금은 아직 마음이 어리기에 방황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성장하면서 원래의 그 모습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조금 안타깝게 생각이 된다. 후회스럽기도 하다. 좀 더 열심히 그 아이의 엄마를 설득하였더라면 되었을까? 새로운 단원에 들어가면 눈을 반짝이면서 어떤 것을 알게 될까 호기심을 나타냈던 그 아이는 지금 없다. 얼마나 돌고 돌아 다시 호기심을 해소하는 아이로 돌아와 줄지 모른다.
나도 스스로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양으로 승부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그 당시에 호기심을 나타냈던 것을 몇 년간 보지 않는다.
어른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지식이나, 100점 맞는 법이 아니라 공부와 놀이, 교우관계 등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이 아닐까..
그것만 가능하게 된다면 아이도 스스로 납득할 정도의 공부를 하고 책임질 수 있을 만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할 텐데...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드는 반복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