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a Oct 22. 2015

층간 소음 교향곡

무수한 소리들로 아파트는 조용할 날이 없다.


#11 층간 소음 교향곡:
무수한 소리들로 아파트는 조용할 날이 없다.


장면 하나. 

깊은 밤, 아파트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피리 소리에 잠을 깬다. 며칠 간 잠잠하다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저 이가 또 피리를 불러 나왔구나. 범인은 중년 남성, 이웃집의 가장이다. 항의? 안 해본 게 아니다. 

 

 “왜 낮도 아니고 오밤중 새벽에 그렇게 피리를 부세요?” 

 “낮에 불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저도 출근하고 일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럼 다른 사람들도 출근하고 일 해야 하는데 잠은 자게 해주셔야죠. 집 안에서 부시던가요.” 

 “집에서는 마누라가 못 불게 해요.” 

 “그렇다고 아파트 복도에서 불면 되겠어요?” 

 “그럼 저는 어디서 피리를 붑니까.” 


음, 그냥 대화가 안 되는 양반이었다. 어휴 저 미친 놈, 또 저 지랄이네. 허공에 욕이나 몇 마디 하고 귀를 막아볼 뿐이다. 나는 귀가 없다, 나는 귀가 없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주문을 외며 애써 다시 잠을 청한다.     



장면 둘. 

아파트 복도 초입에 있는 1301호에는 초코라는 강아지가 산다. 옆집 사는 사람도 모른다는 요즘 같은 시대에, 몇 집 건너 사는 강아지 이름을 어떻게 다 아느냐고? 

 

 “왈왈왈왈왈!! 컹컹컹!!!”

 “초코야~ 조용히 해~”

 

이 소리는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301호 앞을 지나 우리 집으로 갈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다. 집에 안착해도 초코 짖는 소리는 이따금 계속 들려온다. 사람만 지나간다 하면 맹렬히 짖어대는 녀석 탓이다. 덕분에 나는 1301호 사시는 분들과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건만 그 집 강아지 이름을 다 안다.     



장면 셋. 

윗집 남자의 애창곡은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다. 다른 노래는 들은 적이 없다. 일편단심이다. 시도 때도 없이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신다. 그것도 무반주에 생목소리로 아무 때고 야윈 널 달래시느라 고생이 대단하시다. 그걸 참고 들어야 하는 나의 고생도 대단하시다. 늘 그 노래만 고집하는 걸 보면, 야윈 네가 좀처럼 달래지지를 않는 모양이다.     






피리 소리, 개 소리, 노랫소리, 그 밖의 소리, 무수한 소리들로 아파트는 조용할 날이 없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이 될 것인가 희극이 될 것인가. 도저히 못 참겠다고 가서 삿대질하고 언성 높이다 자칫 큰 싸움이라도 나면 혹시 모른다. 어느 날 뉴스 사회면 한 구석에 떡하니 실릴 어떤 비극적 사건이 벌어질 지도.


그 이는 왜 복도에 앉아 피리를 불까. 대화로는 끝내 알 수 없었던 그만의 독특한 정신 세계와 그만의 무슨 사정이 있겠지. 초코는 낯선 사람을 유독 경계하는 성격인가 보다. 윗집 남자는 노래방 갈 친구와 돈이 없는 건가. 한편으론 이렇게 그 소음의 주체들이 측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어딜 가든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한 곳 있겠는가. 애초에 세상이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닌 것을. 오늘은 목 상태가 전보다 낫네, 그래 오늘은 후하게 주자 40점 하며 어느새 윗집 남자의 노래에 점수를 매기고 있는 나다. 한데 뒤엉킨 이 소음들은 그렇게 이미 내가 사는 아파트의 배경 음악이 되어 있나 보다. 

그렇다면 곡목은 ‘층간 소음 교향곡’이라 붙여볼까.




Mila의 또 다른 mini fiction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ila/2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