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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Dec 09. 2015

간장 두 종지, 그리고 고맙다는 말

매식(買食)과 매식(賣食)이 오고 가는 관계는 다 그런가요?


#16 간장 두 종지, 그리고 고맙다는 말: 
매식(買食)과 매식(賣食)이 오고 가는 관계는 다 그런가요?



2015년의 벽두부터 말미까지 '종지'가 참 문제다. 

연초는 마카다미아 넛츠를 종지에 담느냐 마느냐로 촉발된 사건의 이후 전개가 연일 보도되며 떠들썩하더니, 연말이 다가오자 간장 종지 2개를 덜 줬다며 기자 정신을 발휘한(?) 중국집 저격 기사가 떴다. 이쯤 되면 '종지'를 2015년 화제의 단어 중 하나로 올려도 괜찮을 듯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싶다면 종지를 걸고넘어지는 방법은 어떨까?

 

매식(買食)이 일상인 직장인들과 매식(賣食)이 생계인 음식점 종사자들은 항상 부딪힌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설렁탕을 주문했고 설렁탕이 나왔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먹은 만큼 돈을 냈는데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이 이상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현우, "[Why] 간장 두 종지",『조선일보』, 2015.11.28 (일부 발췌)


2015년을 마무리할 종지로 당당히 등극한 이 "간장 두 종지"라는 칼럼에서, 위의 문장들을 보았다. 기자는 돈 내고 먹는데도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이 도시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에 뭐하러 고맙다는 말까지 하느냐는 건데, 참 무섭다. 아무리 자본주의적 논리가 사회에 팽배하다지만, 자본주의 먼저 나고 사람 난 건 아닌데 말이다.






자본주의적 질서만이 법이요 도덕이자 절대적 원리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산다고 가정해보자. 어떨까? 나는 아래와 같은 상상을 해본다.


1.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상층에 사는 사람이 생수를 주문했다. 

택배 기사는 무거운 생수병을 짊어지고 계단을 기어올라와 배달을 해준다. 

그래도 고맙다고 할 필요 없다. 택배비를 지불했으니까.


2.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주인이 서비스라며 음료수를 준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주문한 음식은 돈을 낸 것이니 안 고맙고, 서비스로 주신 음료수만 감사합니다." 

아니지. 돈 안 받고 음료수를 준 주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해야 하려나?


3. 매년 스승의 날이면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가 널리 불린다. 

가만, 선생님도 다 월급 받고 날 가르쳐주시는 건데, 은혜랄 게 뭐야? 

왜 고맙고 왜 보답을 해야 하지? 이 노래, 없애도 되겠다!






내게는 단골로 드나드는 한 라멘집이 있다. 첫 직장 부근이어서 5년 전 개업할 때부터 갔던 곳이다. 사실 그 직장을 다니지 않는 지금은 단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자주 가기가 어렵다. 주인의 사정상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라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드물게라도 찾아가면 주인은 항상 얼굴을 알아보고 '단골손님'이라며 반긴다. 식사값을 깎아주기도 한다. 계산해주는 손이 거칠어 보였던 지라 나 역시 주인에게 핸드크림을 사서 선물하기도 했다. 매식(買食)과 매식(賣食)이 오고 가는 관계도 이렇게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해관계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이해관계 또는 매매를 매개로 맺어진 관계라 해도 결국 그것이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렇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생산과 공급의 구조를 고민하던 가운데서 나온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지, 그것이 사람 사회 전반을 지배할 최고선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간과하고 살면서 사람을 대하다 보면 간장 두 종지 같은 칼럼이 나온다.


대가를 지불하든 안 하든 고맙다는 말은 웬만하면 아끼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각박해져 가는 세상이다. 언어까지 인색해지면 관계는 식어갈 수밖에 없다. 고맙다는 말 아껴서 뭐 하나. 말은 돈과 달라서 아낀다고 부자 되지 않는다. 경험해보면 안다. 

진심이 담긴 고맙다는 말은 생각보다 힘이 크다는 것을.




Mila가 나누고 싶은, 우리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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