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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Sep 18. 2015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를 우려한다

존재를 무시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6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를 우려한다:
존재를 무시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의 표제작 「침이 고인다」의 주인공은 보습학원 강사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와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기는 요원하다. 등록금을 벌려고 시작했던 강사 일에서 졸업 후에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잠시 ‘거쳐 가는 곳’이자 곧 ‘과거’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노량진은 그녀에게 아직도 ‘현재’이고 자취생의 삶이 계속 ‘유예되는 곳’이다.


어느 날 그녀의 좁다란 자취방으로 후배 하나가 찾아들어온다. 어릴 적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후배는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더부살이를 전전하는 신세다. 자신보다도 삶이 남루한 후배를 보며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일말의 동정심이 인다. 그날로 둘의 동거는 시작된다.

 

눈칫밥 깨나 먹어본 후배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집안일과 이런저런 뒤치다꺼리를 살뜰히 돌본다. 거둬준 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사소한 배려가 몸에 뱄다. 선배의 호불호와 취향도 섬세히 살피며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애쓴다. 


어느새 후배는 화장법도, 옷 입는 스타일도, 와인을 좋아하는 취향도 조금씩 그녀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미묘한 불편함이 시작된 지점은 거기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해져 가는 후배가 점점 거북하다. 조금씩 격차가 좁혀져 가는 그 느낌이 불쾌하다. 우위를 지키고 싶다. 


그녀는 알량한 자취방의 주인 행세를 하기로 한다. 후배를 내쫓는다. 방세를 내는 자신과, 얹혀 산 후배의 수직적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나 후배가 없는 혼자만의 방에서 안도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애써 외면하려고 켠 컴퓨터엔 그녀를 위해 후배가 다운로드해뒀던 미국드라마가 있다. 더블 클릭 후 재생, 그렇게 방 바깥의 허구 세계로 의식을 도피시킨다.




무엇이 이들의 삶을 이토록 황량하게 만든 것일까. 극히 미묘한 정서를 파고드는 이 소설은 한국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청년층이 영위하는 쓸쓸한 삶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쟁의 내면화를 장려하는 사회, 불우한 가정사가 곧 개인의 신분이 되는 사회, 서로가 서로를 순위 매기는 사회.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는다. 서로 연대하지 못한다. 그저 살벌한 각자도생을 주문할 뿐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경쟁을 긍정하고 힘을 대접하는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줄 세운다. 권력이든 돈이든 더 가진 사람일수록 순서대로 앞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을 마음으로 사귀어 서로 나란히 서는 법을 잊어버리기 쉽다. 고만고만해 보여도 도토리 키 재듯 서열을 매긴다.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


힘의 논리를 주도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된다. 맞설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자가 어떤 불합리한 수단을 쓰더라도 강자의 위치에 있는 한 그에게 도전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이래저래 분노를 돌릴 대상은 공격해도 겁날 일 없는 안전하고 약한 상대다. 혐오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기 쉽다. 거기서 획득하는 얄팍한 우위가 안도감을 준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진리가 된다.


미국의 거부(巨富)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 물망에 오르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가 내뱉는 독설들이 연일 화제인데, 예컨대 멕시코계 불법 이민자들을 싸잡아 마약업자·범죄자·강간범으로 몰고, 여성을 ‘개, 돼지, 역겨운 동물’로 지칭하는 식이다. 그의 발언은 한결같이 약자 혐오로 수렴된다.  


수준 이하의 막말들을 쏟아내도 트럼프는 다른 대선 예비 후보자들을 압도하며 공화당 내 1위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그간 정치계에 입문하고자 여러 번 도전 끝에 실패를 맛봤던 그지만, 이번만큼은 그 바람이 거세다. 편파 발언이 인기를 모으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시대의 변화가 읽힌다. 강자의 권위에 동조하면서 약자를 혐오하고 끌어내려 견제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막말 노이즈 마케팅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은 유색인종과 여성 등 소수자를 포용하는 사회로 성장해왔다. 동성 결혼 합헌 판결 등 소수자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극단적인 시장경제주의 속에서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안전망 구축에 인색한 미국 사회의 약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 안에 백인남성, 힘, 부유함 등의 우월성을 인정하던 과거의 미국을 향수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엄존한다. 트럼프는 그들이 동조할만한 가치를 대변하는 권위의 인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는 그 대상을 지정해두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깔봐도 되는 정도의 대상이나 얕잡아볼 만한 여지가 있는 대상에게 주로 사용되는 경멸 또는 멸시 같은 단어와는 달라서, 혐오의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서 혐오라는 단어의 대상이 주로 약자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민노동자를 혐오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한다. 우리 시대의 혐오는 약자를 제물로 삼는다. 혐오의 대상이 약자이므로 함부로 대하는 경향 또한 나타난다. 혐오의 감정을 격렬하게 표출해도 두려울 게 없는 만만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벌레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일이 예사다. 아이를 극성스럽게 키우는 여성에게는 '맘충'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세월호 유족을 '유족충'이라 부르기까지 한다.


KBS '일베기자' 임용 논란 관련, 문제가 된 '일베기자'의 발언


약자에 대한 과도한 혐오감의 표출은 역설적이게도 혐오하는 주체의 불안감을 방증한다. 소설 「침이 고인다」 속 주인공은 자신과 격차를 좁혀가는 후배의 모습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나보다 하등하다고 여겼던 존재가 나의 위치를 위협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때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 상대방을 다시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방어 기제로써 혐오의 언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최근 ‘꿈이 대통령’이라는 한 초등학생에게 “정말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던 대통령의 발언이 두고두고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현실감이 결여된 발언이라는 비아냥이다. 요즘 금수저라는 단어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조건적 격차가 긍정되는 사회에서 공연한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는 시대 분위기다.


금수저가 대접받는 사회, 4년제 대졸 고학력자도 취직하기 어려운 사회, 열심히 해도 잘 산다는 보장이 없는 사회에서 젊은 세대는 키워온 꿈보다도 훨씬 못한 현실에 직면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를 가면 그 뒤의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주위에서 불어넣어 주는 장밋빛 기대 속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막상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현실은 달랐다.


자괴감과 자책감 속에 하루하루가 버겁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모든 걸 내 탓만 하며 살기엔 버티기가 쉽지 않다. 지금에 만족하면서라도 살아야 한다. 초라해도 여기서 더 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늘 아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아래를 보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그러던 중 위안을 찾던 ‘아래’가 점점 치고 올라온다. 내가 버티고 서있던 조그만 경계가 위태롭다. 거시적으로 사회 문제까지 짚어볼 여유도 없다. 당장 보이는 ‘아래’를 향해 나와 구분되는 명확한 선을 긋고 싶다. 더 올라오지 못하게 끌어내리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쫓기는 사람의 언어는 격해진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힘과 돈이라고 인정하고 체념하는 순간 약자를 향한 폭력은 제어 장치가 없어진다. 이런 체계 속에서는 힘이 힘을 낳는 것을 전혀 견제할 수 없다. 약자 집단은 된장녀로 맘충으로 계속 새롭게 호명되며 분노의 쓰레기통 취급을 당한다. 나보다 밑이라고 생각하는 곳과 힘주어 선을 긋고 혐오의 언어를 내뱉을수록 내가 연대하고 기댈 상대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더욱 외로운 섬이 되어갈 뿐이다.




'얀테(Jante)법'이라는 것이 있다. 북유럽 국가에서 통념적 규율로 널리 받아들여지며 가정교육의 근간이 되고 있는 관습법이다. 이것의 기본 정신은 '사람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북유럽인은 ‘평등‘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친다. 정치인을 뽑는 데 있어서도 훌륭한 리더란 '특출함'이 아닌 '동등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북유럽인의 정서다.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가서도 옷을 직접 다려 입고, 행사 때는 본인이 직접 케이크를 구워오는 등 특권 의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핀란드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


북유럽 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복지 국가'라는 것은 이런 정신에 기초한다. 돈이 많아서 복지를 시작한 게 아니다. 핀란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겪은 후 극히 가난했던 나라다. 없는 형편에서도 복지 국가의 기틀부터 다진 까닭은 소수의 부자가 나머지를 지배하는 나라를 꿈꾸기보다 모두가 똑같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를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 또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을 앞뒤로 줄 세우며 물질적 풍요만을 고민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관적이기 쉽다. 삶이 고달플수록 부정적 감정을 분출할 대상을 찾고, 약자 집단으로 눈을 돌린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들도 나와 똑같이 소중하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모두 동등하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늘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강자에 위축되지 않고 약자에 오만하지 않으며 떳떳하게 자존할 수 있다. 권력에는 지레 겁먹으면서 만만한 상대에게 화풀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의 우토야 섬에 총성과 함께 폭발음이 일었다. 청소년 캠프에서 벌어진 이 참혹한 테러는 76명의 희생자를 냈다. 범인 브레이비크는 반이민·반이슬람을 주장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집권 노동당의 다문화 정책에 강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가져온 자였다.


노르웨이 정부와 왕실은 이런 참사를 겪으면서 놀랍게도 ‘관용’을 말했다. 스톨텐베르크 당시 총리는 “이와 같은 폭력에 우리는 개방과 더 큰 관용, 포용이라는 우리의 가치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콘 왕세자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마련한 추모 기도회에 참석하며 노르웨이의 포용 정신은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브레이비크의 혐오는 우군을 얻지 못했다. 그의 범죄는 개인적 일탈에 그쳤다.


우토야 테러 사건 1주기 희생자 추모 행사


"우리는 잔혹함에는 친근함으로, 증오에는 화합으로 답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보여줄 것입니다."라는 정부와 왕실의 입장 표명에 노르웨이 국민은 94%의 지지율로 화답했다. 9·11 이후 보안 검색 시 인권 침해 논란 등 ‘테러 노이로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노르웨이는 시민의 자유와 화합을 우선하는 행보를 보였다. 노르웨이가 보여준 관용과 성숙함은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 큰 귀감이 되었다.


우토야 섬에서는 최근 4년 만에 청소년 캠프가 재개되었다. 우토야 섬을 청소년 민주주의의 성지로 만들자는 기치 아래 벌어진 모금 운동 등이 맺은 결실이다. 관용과 화합은 이렇게 극단적인 참사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2014년 8월, 미국의 소도시 퍼거슨에서는 한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사회는 갈등을 아직 봉합하지 못하고 있다. 인종 차별을 반대하고 경찰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퍼거슨의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이 와중 또다시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는 사건이 반복되고 말았다. 


퍼거슨 사태 1주기 추모 시위


혐오를 연료로 굴러가는 사회는 위험하다. 혐오는 그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마음이고, 존재를 무시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폭력은 결국 불필요한 희생자를 낳을 수밖에 없고, 희생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자성하지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혐오를 몰아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Mila가 나누고 싶은, 우리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il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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