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배신으로 대답하는 사회를 당신은 진정 원하는가
#19 배신 권하는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
믿음에 배신으로 대답하는 사회를 당신은 진정 원하는가
이를 테면 연말 송년회 같은 것 말이다. 여러분이 속한 어떤 집단에서 날을 잡고 가령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했다 치자. 시간에 맞게 올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고백하건대 나 또한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잘 지키는 편은 아니다. 다만 나보다 약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들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나 같은 사람조차도 혼자 약속 장소에 도착해 누구 하나라도 빨리 오기를 기다려본 경험이 꽤나 있으니 말이다.
어느 뷔페 텅 빈 예약석 한 귀퉁이에 홀로 도착해 앉아있었던 그 날이 떠오른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초조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서빙 직원이 지나갈 때마다 어딘가 눈치를 살피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애써 외면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바삐 손가락을 놀려보았다. “나 도착! 다들 오고 있어? 어디쯤이야?”
고깃집에서 혼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고기를 구워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인기가 좋은 집이라 주문 안 할 거면 나가라는데 어쩌겠는가. 목살 2인분 시켜놓고도 눈치가 보인다. 왜 시간 맞춰 와 가지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기가 빨리 익어도 난처하니, 온기가 약한 불판 가장자리에 고깃덩이를 밀어놓아야 한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나? 고기는 아직 안 탔다. 누구 빨리 안 오나 내 애가 탔을 뿐.
약속 시간에 임박해 여기저기 연락을 취해본 결과 아직 도착하려면 다들 멀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뷔페와 고깃집에서의 안 좋은 추억이 다시 떠오르려 한다. 그래 아직은 들어갈 때가 아니지. 약속 장소 주변 공중 화장실 등지의 애매한 장소를 배회하며 시간을 때운다. 아, 현금이 없네? 이런 남는 시간엔 은행 365일 코너 찾아서 회비로 낼 돈 뽑는 게 제격이지. 시간 때울 거리가 생각나서 몹시 기쁜 이런 경험, 나만 해본 걸까.
이쯤 되면 깨달아야 한다. 아, 내 사회적 독해 능력이 정상보다 현저히 떨어졌던 거구나. 8시에 만나자는 말을 8시까지 오라는 뜻으로 알다니. 8시에 출발해서 만나자는 뜻인 것을. 곧이곧대로 믿은 나는 바보였구나. 눈 딱 감고 늦게 온 사람들에게 화를 내라고? 부질없다. 맞춰 온 사람은 나 하나, 늦는 사람은 나머지 전부다. 게임이 될 리 있나. 그래도 당신이라면 화낼 거라고? 뭐 말리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당신 없을 때 ‘쟤는 사회생활할 줄 모르나 봐. 뭐 저리 옹졸해?’하며 수군대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 정도는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에스컬레이터에는 이름표처럼 붙어있는 스티커가 있다. ‘우리 모두 두 줄 서기를 합시다.’ 거기 적힌 이 말을 꼭 지켜야 된다고는 믿지 마라. 에스컬레이터 고장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두 줄로 서 달라고 아무리 스티커를 붙이고 홍보를 해도, 우리는 그저 간단하게 무시하면 된다. 사람들은 꿋꿋하게 한 줄로만 서서 탈 테니까.
식당가에서는 최근 노쇼(No Show)가 화제였다. 이게 왜 화제가 되고 놀랄 일로 여겨지는지 통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사회에서 노쇼가 없으리라는 믿음 자체가 바보짓 아닌가? 왜 약속을 믿느냐는 말이다.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단체 손님 덕분에 매출은 펑크가 나고, 노쇼가 몇 건 연달아 터졌다간 식당은 문 닫을 기로에 서기도 한단다. 그러게 애초에 왜 약속을 믿어서 그렇게 패가망신을 하는가. 안 믿어야 안 망할 텐데 말이다.
일본에는 숙박 예약 대행으로 유명한 웹사이트가 있다. 여기 접속하면 일본 전역의 각종 료칸, 호텔 등을 두루 예약할 수 있다. 이 웹사이트에 등록된 대부분의 숙박업체는 예약금을 따로 받지 않는다. 만약을 대비한 신용카드 정보도 필요 없다. 현장 지불이 거의 100%다. 이 웹사이트에서 몇 년 전 한국어 홈페이지를 오픈했다. 그러나 모든 숙박시설이 한국인에게 다 오픈돼 있지는 않다. 요율 또한 일본인이 이용할 경우보다 전반적으로 더 비싸다. 왜 이런 이중 잣대가 생겨났을까?
바로 노쇼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 이용자들이 숙소를 예약한 뒤 취소한다는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 행태를 보였다. 일본의 숙박업주들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고신뢰사회로 분류되는 일본의 정서 상,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예약을 어기는 행위 자체가 매우 드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피해 예방 대책이 필요했고, 그 결과 생긴 것이 바로 한국어 홈페이지다. 여기엔 노쇼를 감당할 의사가 있는 숙박업소들이 등록돼 있으며, 노쇼 피해에도 운영에 지장이 없도록 더 비싼 요금이 설정되었다.
뿐만 아니다. 나는 일본 여행을 앞두고 렌터카를 예약할 때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여행 시점으로부터 석 달 전, 이메일로 일본 현지의 렌터카 업체에 예약을 시도했지만 답신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이다. 다섯 번이나 이메일을 다시 보내고, 해당 지역 관청 교통과에 문의까지 마친 후에야 렌터카를 예약할 수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렌터카는 국내 대행업체를 통해 예약할 경우 1만 원 정도 더 저렴했다. 다만 국내 대행업체는 고객으로부터 신용카드 정보를 미리 제공받고, 예약 불이행시 페널티 2만 원을 별도로 청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방식이다. 일본은 현지 지불이 원칙이고, 불이행 페널티라는 개념이 없다. 예약해놓고 멋대로 안 나타나는 한국인들이 많으니 일본 업체는 내 이메일을 여러 번 무시했던 것이고, 노쇼 가능성을 감안해 더 비싼 요금을 책정한 것이었다.
말에 힘이 없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에스컬레이터 사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고, 기기 고장에 의한 보수비용과 이용 불편이 더 발생할 것이다. 예약은 말로 할 때보다 예약금이라는 돈을 걸어야 더 잘 지켜진다. 신용카드 정보 없이는 호텔도 렌터카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말만으로도 약속이 지켜지지만, 믿음이 외면당하는 사회에서는 말과 더불어 강제적 조건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비용뿐만 일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갈등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서로 믿지 않는 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법, 소수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관계에 편견이 생긴다. 혈연, 학연, 지연 등의 구태에 매달리기 쉬워진다. 이렇게 공고한 벽을 쌓을수록 공정함은 사라지고, 편 가르기와 편법이 횡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 서로 믿지 않기를 권장하는 이 곳이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그곳 맞는가. 믿음에 배신으로 대답하는 사회를 당신은 진정 원하는가. 그런 곳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는가. 믿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건 결국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이다. 기꺼이 바보가 될 용기, 그것이 필요하다.
Mila가 나누고 싶은, 우리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