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석제 단편 소설「책」을 읽고
#4 편협함을 넘어 타인 바라보기:
- 성석제 단편 소설「책」을 읽고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표 앞에서 추풍낙엽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중에는 예외적이게도 약 5년 간 꽤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주가 되는 타 예능과는 달리, 이 방송의 주인공은 일반인들이다.
어떻게 평범한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5년간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사실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말 자체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반인들이 출연하지만 그들이 평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이한 일반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듯싶다. 오늘은 어떤 독특한 사람이 나와 괴상한 이야기를 들려줄지에 목마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으며, 그런 시청자들은 이 방송에 채널을 맞출 것이다.
성석제의 단편 소설 책의 등장인물인 당숙 또한 당장 이 방송에 출연해도 모자라지 않을 기인이다. 사방 벽에 그득한 책 더미 속을 기고 헤집으며 유아기를 보낸 당숙은 밥도 싫고 술도 모르겠고 그저 책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사들인 책만 해도 이미 삼만 권이 넘어 감당이 안 되건만, 아랑곳 않고 해외 주문까지 일삼는다.
한데 작중 화자인 ‘나’가 당숙을 보는 눈은 생각보다 매섭지 않다. “몇몇 사람에게서 서음(書淫)이라고 불리기는 해도 그는 나름대로 극한까지 가본 사람이다."라며 당숙을 추어올리기도 하고, 당숙이 부탁한 것도 아닌데 자원해서 책을 맡아주겠노라고 나서기도 한다. 그러면서 책에 대한 경외감 때문인지 책에 깔려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인류애인지 모르겠다는 농을 슬쩍 덧붙인다.
성석제의 소설에서는 평범과 거리가 먼 독특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독자들은 이 낯선 사람들의 기묘한 매력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성석제의 시선이다. 작중 화자가 당숙을 보는 관점이 그렇듯, 그런 괴이한 인물들을 바라보는 성석제의 눈은 일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범죄자 보듯 하는 유(類)의 불편한 눈초리와 결이 다르다.
이 지구 안에 나는 한 명이고 타인은 72억 명이 넘는다. 세상살이를 내 목소리만 내면서 할 수는 없다. 익숙하지 않은 타인의 세계에 대해 이상하다고 선부터 긋거나, 별종 보듯 말초적 호기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안의 소리만큼 타인의 소리도 귀하게 듣는 순간, 우리는 편협함을 넘어설 수 있다. 각기의 다름을 인정해야만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단편「책」이 담긴 소설집『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작과 비평사, 2002) 말미 작가의 말에서 성석제는 “나는 당신들과 다르고도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것, 나무와 돌, 하늘, 바람, 아카시아꽃에서 언제나 당신들을 느낀답니다.”라고 썼다. 나와 함께 세상을 이루는 모든 다른 것들 또한 중히 여기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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