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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Sep 22. 2015

생사(生死), 미추(美醜), 염정(染淨)의 한가운데

- 김훈 단편 소설「화장」을 읽고


#7 생사(生死), 미추(美醜), 염정(染淨)의 한가운데:
- 김훈 단편 소설「화장」을 읽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는 문화센터 강좌에서 시(詩)를 가르치는 스승이 나온다. 

그는 수강생들 앞에 사과 한 알을 가져다 놓고 묻는다. 이 사과를 진실로 들여다 본 적 있느냐고. 사물을 진짜로, 진정으로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사물을 그 자체 그대로 들여다보려 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눈이라고 했다.



영화 <시>



김훈의 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 2006) 중 단편 「화장」을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내렸다간 당혹스럽기 쉽다. 김훈은 도대체 '적당히'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 같다. 작중 화자의 아내는 심각한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다. 헐렁하게 골반뼈에 늘어진 피부부터 까맣게 타들어가듯 말라붙은 대음순까지, 김훈의 펜은 그녀의 몸을 자비 없이 갈기갈기 파헤친다. 적나라하기가 징그러울 정도다.


꾹 참고 소설 초반부를 읽어 넘기면 안타깝게도 더욱 징그러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아내가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주인공은 젊고 매혹적인 부하 직원 추은주에게 육욕적인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안에서는 아내의 꺼져가는 생명과 추은주의 생기 어린 아름다움이 가차 없이 교차한다.



영화 <화장>



김훈은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살았던 작가다. 그 자신이 청춘을 바쳤노라고 고백했던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사직한 데는 꽤나 떠들썩했던 일화가 있다. 당시 <한겨레 21>의 ‘쾌도난담’ 지면에 오른 그의 발언이 논란을 빚은 것이다. '여성보다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 '80년 당시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직접 썼다' 따위의 말은 솔직함을 넘어선 발칙함으로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는 스스로 편집국장 자리를 내놓았다.


그는 정의나 신념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의견이나 판단보다도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정의라는 것은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으며, 사실의 토대 확보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이 김훈의 생각이다. 정의나 신념을 앞세운 뒤 거기에 부합하는 사실을 가져다 붙이는 것은 이미 저널리즘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은 그의 언론관을 닮았다. 그는 설득하기보다 관찰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우리는 오 상무의 요도 안으로 삽입되는 도뇨관의 여정을 읽어야 하고, 병든 아내의 항문에서 흘러내리는 똥물을 지켜보아야 한다. 불편할까봐 가려주는 배려는 없다. 지독하게도 사실적인 묘사를 감내해야 한다.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들추어 보일 뿐이다. 건조하고 간결하다.



영화 <화장>



소설의 제목 ‘화장’은 삶과 죽음이라는 반대의 개념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죽은 시신을 불사르는 화장(火葬)이면서, 살아있는 자를 더욱 생기롭게 보이도록 돕는 화장(化粧)이기도 하다. 하나는 무척 허무한 정서를 환기시키는 행위지만, 다른 하나는 무척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활동이다. 세상에는 이렇듯 나란히 놓기엔 가혹한 대립적 개념들이 엄연히 병존한다.


김훈은 그런 세상을 날 것 그대로 들이밀어 보이는 작가다. 사물을 진실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시(詩)가 써지듯, 아내의 죽음 앞에 다른 여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이 피어오르는 오 상무의 내면을 가감 없이 비추자 소설이 되었다. '가벼워진다'를 택하며 내면적 부채감일랑 사뿐히 내려놓는 오 상무. 그 모습은 신념보다 사실에 주목하는 김훈의 눈에 비친 한 인간의 부도덕할지언정 솔직한 면모다.


아름다운 것, 옳은 것만 존재하는 곳은 현실 세계가 아닌 유토피아다. 만물을 어찌 선과 악의 잣대로 모두 가늠할 수 있을까. 옳은지 그른지 정의 내려지지 않는 작가 김훈은 하나의 우주와 같은 세계다. 김훈의 우주에는 거침없이 빨려들 수밖에 없는 마력의 블랙홀도 있고, 가까이 하기 두려운 우범 지대도 있다. 


까뮈의『이방인』에서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가 살인범이라는 방증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것은 도덕의 영역에서 눈살 찌푸려질 행동일지 모르나 범죄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불편한 진실은 어디에나 실존한다.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다만 바람일 뿐, 실존을 지울 수는 없다. 김훈은 우리에게 그런 현실의 이치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김훈이 창조한 허구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의 피부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있다.




Mila의 또 다른 서평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ila/4


https://brunch.co.kr/@mil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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