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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Sep 25. 2015

88만원 세대의 초상

- 김애란 단편 소설「칼자국」을 읽고


#9 88만원 세대의 초상:
- 김애란 단편 소설「칼자국」을 읽고



중학교에 입학해 교과서를 배부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국어, 수학, 영어 따위 으레 짐작했던 표제의 책들 사이에서, 낯선 과목이 하나 눈에 띄었다.「기술·산업」이라는 과목명이 붙은 그 책을 손에 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학년도부터 교육 과정이 바뀌어서, 이제 여학생도 ‘기술·산업’을 배우고, 남학생도 ‘가정’을 배운다.”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양성 평등이 제도화되는 시기를 거치며 자라난 이들이 현재의 30대다. 기술도 가정도 배우며 자란 우리 30대 여성들은 우리 세대 어머니의 뒤태에서 ‘곧 사라져갈 부족의 그림자’를 보곤 한다. 김애란 소설집『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 중 단편 「칼자국」은 이런 우리 세대 여성의 눈으로 모성을 그린다. 


소설 속 화자의 어머니는 전통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 또는 새끼를 거둬 먹이는 어미로서의 역할에 매우 성실한 사람이다.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도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상 차려주기를 거르지 않는다. 화자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웅얼거린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이다”라고(20면).


그러나 화자는 어머니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히는 어머니처럼 사는 법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수십 년간 내 허기를 스스로 감당해본 적 없는 나. 내가 먹은 무수한 음식들에 새겨진 칼자국은 어머니의 칼에서 나온 것이지, 내 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어미의 안온한 품에서 자란 새끼는 그렇게 받아먹을 줄만 알았다. 조개를 캐 스스로 번 돈으로 옷을 사 입고 외할머니가 밥하라고 하면 밥을 짓던 어머니와는 달리, 화자는 어머니가 ‘맛나당’에서 칼질하며 번 돈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시대가 바뀌었고, 경기는 예전 같지 않다. 동네 공업단지는 쇠락해 사람이 없고, ‘맛나당’ 근처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섰다. 어머니도 예전 같지 않다. 손이며 무릎이며 혈압까지 구석구석 아프다. 새끼로서만 살아왔던 화자는 아픈 어머니가 낯설다. 늘 강건했던 어미의 자리에서 내려와 아프고 약한 엄마의 모습을 보일 때면, 나는 뭘 어찌할 줄 몰라 그저 대책 없이 괜찮을 거라고 뇌까릴 뿐이다.






김애란은 지금의 30대 여성을 대표하는 작가다. 비약적으로 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인 70, 80년대에 그녀와 우리들은 태어났다. 당시는 여자도 앞으로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그득했다. 부모 세대와는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고등 교육을 받은 우리는 이윽고 사회에 ‘던져졌다’


호황은 짧았다. 우리 세대가 성인이 될 쯤은 이미 장기 불황과 실업 문제가 사회를 잠식한지 오래였다. 어둠침침한 서울의 구석 자취방을 전전하며 어엿한 사회인을 꿈꿔보지만 번듯한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다. 지식은 늘었지만 쓸모는 잘 모르겠고, 생활력은 배운 적이 없는 터다. 능력은 없는데 부모님은 연로해 간다. 자꾸 아프시다. 그런 부모님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열패감에 안으로 더 안으로만 침잠해온 30대에게 김애란의 소설은, 그녀의 고백은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더욱 반갑다. 조금 초라해도 괜찮다고, 솔직하게 발산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속한 세대와 진한 공감대를 이룬다. 풍요의 시대 속에 정작 남루하기만 한 우리의 삶을 담담한 쓴웃음과 함께 펼쳐놓는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 동질감과 함께 묘한 용기마저 솟는다.


사람은 거울을 볼 때, 타인을 관찰할 때와 같은 뇌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거울을 본다는 것은 곧 남의 시각을 획득하는 활동이 된다. 주관을 잠시 떠나 객체의 관점을 헤아려보는 시간이야말로 역지사지를 배우는 순간이다. 타인과 소통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김애란의 소설은 동세대 여성들에게 이런 거울과도 같아서, 읽고 있으면 내 모습을 타자의 시각으로 관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안긴다. 주관의 영역에서는 무신경하게 넘겼을 일들이, 그의 소설을 읽음으로써 문득 가슴에 와서 박힌다. ‘나는  자식이기보다 새끼였구나.’‘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차려본 일이 있던가.’,  ‘나는 어머니를 내 어머니이기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사유해본 적 있었나.’ 


가르치지도 내려다보지도 않고 나란히 내 옆자리에서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듯한 김애란의 이야기는 그렇게 친구와 수다 떨 듯 재미있다가도, 책장을 덮고 나면 새삼 나를 돌아보게 하는 미덕을 가졌다. 오래 두고 사귈만한 좋은 벗과 같은 소설을 그녀가 앞으로 더 많이 써주었으면 한다. 

그러는 사이 그녀도 나도 더욱 성장해 있기를 기대해 본다.




Mila의 또 다른 서평이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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