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인문 컬럼
김경훈 지음
아직은 꽃이고 싶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깊은 밤 빗소리에 흐느끼는
가슴으로 살고 싶다
귀뚜라미 찾아오는 달밤이면
한 권의 시집을 들고
달빛 아래 녹아드는 촉촉한 그리움에 젖고
가끔은 잊혀진 사랑을 기억해내는
아름다운 여인이고 싶다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저무는 중년을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여인이라고 불러다오
내 이름을 불러다오
사랑스런 그대라고 불러다오
가끔은 소주 한 잔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이지만
낙엽을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가슴이 아름다운
중년의 멋진 여인이라고 불러다오
최근 한 60대 여성이 자신을 "아줌마"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소주병을 던져 일행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 있었다.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냐”라는 외침이 남긴 울림은 뭔가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아줌마'란 호칭은 억척스러운 중년 여성, 커피한잔 시켜놓고 여러 명이 나눠 마시는 알뜰한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남성의 70%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고 한 반면,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해 여성의 64%가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듣기 불편한 이 차이가 수천 년을 거쳐온 한국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엿보게 해준다.
그렇다면, 작금의 ‘아줌마’의 존재는 고대부터 있었던 걸까?
옛날 옛적, 우린 여신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삼국시대로 떠나 보자. 이 시기는 모계 사회였고, 사람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성씨의 성(姓)이란 글자는 여자(女)를 품고 있다. 여성은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져 신성하게 대우받았다. 신라에서는 무려 3명의 여왕(선덕, 진덕, 진성여왕)이 나라를 다스렸다. 결혼을 해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변하지 않았고,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집안일을 함께하고, 요리를 나눠하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연암 박지원이 가족에게 "내가 만든 쇠고기 장볶이 잘 먹고 있는지"를 걱정하는 편지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케 한다.
16세기, 돌변의 시작
그러나 16세기를 기점으로 갑자기 판이 바뀌었다. 성리학이 사회 주류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남존여비라는 관점, 남녀를 엄히 구분하는 내외법(內外法) 등이 강화됐다. '남자는 밖에, 여자는 안에'라는 역할 구분이 생겼고, 여성의 사회활동은 철저히 제한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현모양처’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내세웠다. "현모"는 원래 어진 어머니라는 의미였고, "양처"는 신분의 의미였지만, 일제는 이를 여자의 본분으로 정의하며 여성을 가사에만 전념하게 했다. 일제 강제 시행된 호적법(2008년 폐지)은 오직 남성만이 호주가 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한국 여성에게 ‘아줌마’ 이미지의 단초를 제공했다.
아줌마의 조상, ‘아자마’
‘아줌마’의 시초는 ‘아자마’였다. 우리말의 ‘아자(작다)’와 한자의 ‘모(母)’가 합쳐진 이 단어는, 본래 작은 어머니라는 의미로 친족 여성들을 가리키는 다정한 호칭이었다. 고모, 이모, 숙모, 백모 등 친척 여성들을 두루 지칭하던 이 단어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모든 중년 여성을 포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아줌마’ 이미지의 변화
어느 순간부터 ‘아줌마’라는 호칭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먼저,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의 역할을 격하하면서 ‘아줌마’라는 단어에 비하적인 뉘앙스가 생겼다는 설이 있다. 예를 들어, 결혼 전엔 다소곳하던 아내가 시간이 흐르며 남편과 동등해지자, 남편들이 “어이, 아줌마”라며 비아냥 섞인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또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특정 직군(청소 아줌마, 파출부 아줌마 등)에 표현이 반복되면서, 은연 중에 ‘그것은 비칭’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여기에 뽀글이 파마, 몸빼 바지라는 상징적인 외형까지 더해지면서 "아줌마 = 억척스러운 중년 여성"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호칭 인플레이션
요즘 들어 ‘아줌마’라는 호칭이 불편해진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호칭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삼촌, 이모라고 불렀을 사람들이 이제는 선생님, 사장님, 회장님까지 불리게 되었다. 나이와 지위가 상관없이 존칭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이 현상이 기존의 호칭을 덜 고귀하게 만들었달까? ‘아줌마’라는 말은 점점 평범하거나 무시받는 호칭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는 호칭조차 스펙처럼 격을 높여야 하는 세상, 과연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젠더 갈등 속의 희생양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줌마’라는 단어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특히 청년 남성들은 병역, 취업, 주거 등 여러 문제 속에서 역차별을 느낀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갈등 속에서 일부는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아줌마’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아줌마’라는 호칭은 피하고 싶은 말이 되어버렸다.
아줌마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아줌마란 누구일까?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며 삶의 기반이 되어 준 ‘작은 어머니’였던 아줌마는, 이제 가족에게도, 사회에서도 점차 외면당하는 단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아줌마는 들풀처럼 강인하고, 희생과 책임감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들을 ‘아줌마’로 부를 때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붙여진다면, 차라리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호칭으로 바꾸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줌마’의 호칭 개선이 필요한 이유
한 예로, ‘노인’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는 ‘어르신’으로 공식 명칭을 바꾸었거나 변경을 추진 중이다. ‘아줌마’라는 호칭 역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고, 상당수가 이 호칭을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아줌마’라는 호칭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