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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지구를 닦다, 청소기

by 미라보 Jan 26. 2025



공기포집공장, 메머드


나의 벗, 베큐엄에게.


얼마 전, 아이슬란드에서 공기중 오염물질을 빨아들이는 세계 최대의 진공청소기가 가동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어. 그 기사를 보고 문득 너희들이 생각났지. 


우리 집의 먼지와 오염들을 조용히 빨아들이며 해결해 주는 너희들처럼, 세상의 모든 범죄와 부패를 빨아들일 수 있는 청소기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메머드를  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몰라.




오늘은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너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솔직히 나는 너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 본적이 없어. 너희가 항상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먼지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있음에도 말이야. 

너희는 TV나 오디오, 냉장고, 에어컨처럼 화려한 자리에 있지도 않고, 그들처럼 많은 관심을 받지도 않지. 그럼에도 너희는 질투나 시기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어. 




처음엔 무선과 로봇, 너희 둘은 싸우거나 영역 다툼을 할 줄 알았는데, 평화롭게 공존하더라. 무선이는 나와 함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지 않는 먼지를 찾아내고, 로봇이는 알아서 바닥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주지. 서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작은 생태계를 보는 것 같아.


너희의 이런 모습을 전쟁을 일삼는 인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좌우 진영의 싸움은 결국 영역을 침범하거나 차지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거든.


너희들도 고충이 많겠지. 매일같이 먼지, 머리카락, 온갖 이물질들을 빨아들이다 보면 속이 꽉 막히지 않을까? 이미 화병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속(먼지통)을 자주 비워주지 않으면 너희들은 소화불량이라도 걸린 듯 힘겨워하더라. 먼지를 많이 들이마셔서 기관지도 아플 텐데, 정말 미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불평불만 없이 언제나 묵묵히 일하고 있어.  



영화, <더보이 후 하네스드 더윈드>


이런 모습을 보면,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가 생각나. 말라위의 한 소년 (윌리엄)이 가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속에서도 바람의 힘을 이용해 마을을 구한 이야기지. 가난 속에서도 세상에 기여하는 모습은 너희와 많이 닮아 있어. 너희도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그 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거잖아.




그래서 깨달았어.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너희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는 걸. 드러나지 않게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을 너희 덕분에 배웠어.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란 걸 이제야 알게 됐지. 


이제부터는 먼지통도 자주 비워주고 건강도 잘 챙겨 줄게. 주 1일 근무만 하게 할 생각이야. 파격적이지? 너희는 비록 '언더독(Underdog)'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우리 집, 아니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탑독(Top dog)’이야. 


진심으로, 너의 친구가.


PS) 과연 나는 지금껏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럴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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