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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Dec 01. 2021

<듄>

영화 <듄>을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원작 소설을 한 번도 읽은 경험이 없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드니 뵐뇌브가 만들어 내는 영상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는데, 거슬리는 여러 작은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2시간 반을 넘기는 영화 내내 숨 한번 크게 쉬기 힘들 정도로 온 정신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드니 뵐뇌브 감독은 항상 독특하고 창의적인 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들의 스타일이 조리 있게 천체 이야기를 기승전결에 맞춰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뭔가 툭 던져놓고 그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새로운 시선이 열리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후자에 속하는 감독이라는 거죠.


이 영화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감독의 예민한 감수성이 드러내는 독창적인 장면들이 주는 위대함이 있는 반면에 소소한 즐거움이나 위트는 좀 부족해서 옥에 티처럼 느껴지는 대사와 장면들이 간혹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을 못 봤기에 2020년 하반기 이후 영화 중에선 저에겐 최고의 작품입니다




사실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의 스토리를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영화의 내러티브가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또 전후 상황들에 대한 설명을 건너뛰며 장면들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부분을 영화의 구조적인 약점으로 지적하는 경우도 많이 보이는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독의 장기인 독창적인 시선과 장면 디자인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Perspective)을 제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나 많은 명장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번 1부에서는 우주의 미래를 구원할 것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귀족 가문의 후계자 폴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 점차 세상을 꿰뚫어보는 Vision을 스스로 인식하는 과정들을 거대한 스케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원작 소설을 10대에 읽었고 많은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이번 영화를 연출해 가는 그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A boy 가 미래의 희망이 되다.


일종의 성장기가 이번 편에 가장 중심이 되는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생이지지 (生而知之) '공자가 말씀하셨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


대중들은 우리 앞에 나타난 구원자가 생이지지자 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학이지지 (學而知之) '배워서 아는 자' 정도도 일반인 사이에선 대단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운명을 이끌고 갈 바로 '그'라고 믿고 싶진 않겠죠


하지만 운명을 타고난 그의 입장은 어떨까요? 역사에 나오는 그/그녀 들은 모두 생이지지자 였을까요?


감독은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아마도 이런 부분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10대의 질풍노도 시기에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소설이다 보니 더더구나 그런 의문을 갖게 되었을 것 같고요.





이렇듯 영화에서는 크게 5장면 정도로 나누어서 주인공 폴이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해 나가는 모습을 다양한 선택과 위기 상황 등을 통해 드러나게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 영화는 주인공의 꿈을 통해 오프닝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그 꿈속의 여자는 반복해서 폴의 꿈에 등장하며 어느 순간 여자에게 키스를 하려던 폴은 갑자기 죽음을 보게 되죠.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역사적으로 구원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로 증명된 바가 차고 넘치게 많습니다.


두 번째 : 폴은 아버지에게 던컨과 함께 선발대로 떠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거절당합니다. 그렇게 부자는 그들에게 주어진 위치와 그들에게 던져진 운명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는데, 부자간의 대화가 끝나는 순간 카메라의 시선은 갑자기 폴이 서있던 절벽 위에서 그 아래 바다로 수직방향을 비추기 시작하고,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바다가 표면부터 조금씩 흔들리며 무엇인가 물속에서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질풍노도의 혼란을 겪는 청년의 마음처럼 파도치던 바다에서 미래를 향하는 우주선이 떠오르는 이 장면은 주인공 폴이 자신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복선이 됩니다



예고편에선 아쉽게도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여주지는 않고 어느 정도 떠오른 거대한 우주선의 모습만 비쳐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 마침내 모래 행성에 도착한 폴은 아버지를 따라 행성 시찰을 나가게 되고 난생처음으로 샌드웜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기지를 발휘해 스파이스를 채굴하던 인부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찰나에 그는 흡입한 스파이스의 효과로 채굴 장치 앞에 정신이 팔린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을 뻔한 고비에서 장군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후 하늘로 날아오르며 사막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하는 다시 말해서 A boy에서 A man으로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 같은 순간을 보여줍니다


 


네 번째  황제의 음모로 아버지와 신하들이 모두 몰살당한 후 엄마와 함께 사막 부족을 찾아 나서던 폴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샌드웜에 쫓기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근처의 바위산에 올라가 목숨을 구하는 데 이 순간 자신을 향해 거대하게 벌려진 벌레의 거대한 입을 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격하게 됩니다.




5번째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숨을 건 실제 결투를 벌이게 된 폴은  한 번도 살인을 해본 적이 없던 소년의 입장에서 죽음을 앞둔 순간 자신의 미래를 운명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첫 부분의 꿈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암시를 재 확인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내러티브의 진행을 위한 다양한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장면 외에도 영화는 다양하게 감독의 예술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특히 영화의 주된 배경이 사막이다 보니 사막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압권입니다.


사막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죠. 뜨거운 열기, 모래폭풍, 메마름, 갈증, 죽음, 독(전갈) 같은 Uglyness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반면에 고요함, 아무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빛과 끝없이 변화하는 경이로운 형태 및 질감 그리고 시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광활하고 무한함 등등


유명한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도 이런 사막의 매력을 발견하고 말년에는 뉴 멕시코로 이주해서 작업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이번 영화 속의 몇몇 장면들은 저에겐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들을 떠오르게 해 주었습니다






위의 이미지들은 영화사가 제공하는 offical trailer에 등장하는 사막 풍경들입니다.

넓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사막의 신비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PELVIS IV, 1944 Oil on CANVAS


Pelvis는 골반이죠. 생명을 잉태한 후 10달 동안 몸속에서 보호하고 키워내기 위해 중요한 신체 부위인데, 해골의 골반 사이로 투사되어 보이는 하늘의 모습이 아주 독창적입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이렇듯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사막의 풍경을 많이 그리고 있는데, 하나의 개체로서가 아니라 생명계 전체적인 의미로 바라보는 삶과 죽음은 사막을 배경으로 아주 명확하게 생명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진정함의 의미를  드러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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