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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09. 2022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린다 노클린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는 미국의 미술잡지 Artnews 1971년 1월호에 실린 에세이입니다. 



이 기념비적인 글을 기념하기 위해 2021년 2월 영국의 예술/건축 전문 출판사인 Thames & Hudson은 5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한국에도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자인 린다 노클린은 그때까지(사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미술사의 주류 이론으로 적용되던 많은 사고방식들이(위대한 미술가들은 남성이다라는 등의) 미술사에 관한 권력을 독점하던 백인 남성들의 고정관념에서 기인한 것임을 지적해 냄으로서 단지 성차별적인 요소뿐 아니라 위대한 예술에 대한 시각 자체를 새롭게 재건할 수 있는 아주 의미심장한 질문을 미술계에 던져 버립니다.


 예를 들어 호사스러움, 섬세함 그리고 고귀함등이 회화에 있어서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로자 보뇌르'의 <말 시장>등을 예로 듦으로써 "특정 영역의 주제를 선택하거나 또는 특정 주제에 국한된다고 해서 그것을 작품의 스타일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전형적으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39쪽)"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 이런 잘못된 개념들이 단지 페미니즘적 개념의 오류라기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중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술 감상에 대한 보편적 오류에 대한 지적은 현재의 시점에서도 다시 한번 짚어볼 만한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시스템적인 한계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상세하게 지적함으로써 왜 백인 남성들이 미술계에서 더 독보적으로 보이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주요한 예로 누드 드로잉을 들고 있습니다.


 누드 드로잉은 회화 기술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이해되었지만, 여성 미술 지망생들에게는 전라의 모델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금지되었던 사례를 통해 여성 미술가들은 완성된 작품에 대한 남성 우월적 편견이 담긴 비평으로 손해를 볼뿐 아니라, 애초의 교육 과정에 내재된 시스템적인 성차별적 요소 등으로 인해 능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훈련시켜 더 발전시키는 데 많은 장애가 있었던 것이 결론적으로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의 탄생을 막고 있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학위 논문처럼 방대한 양으로 구성된 전문적인 글이 아니라서 오히려 전문가가 아닌 미술 애호가 입장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는데, 저자의 몇몇 주장은 좀 더 다른 관점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린다 노클린은 문학에 있어서는 미술보다 뛰어난 작가가 등장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상세한 내용은 여기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읽어보시길....), 귀족 출신의 예술가가 적은 이유를 여성 예술가가 적은 이유와 비교하면서, 남성이어도 심지어는 우월한 환경에서 성장한 귀족 출신이더라도 전문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천재와 재능의 문제라기보다는 귀족과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닐까?(44쪽)"이라는 질문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데, 이 관점은 젠더 문제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되고 있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좀 더 다른 관점이 추가로 설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견해는 린다 노클린의 논점에 반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잡지의 기사로 실렸던 짧은 글에서 그녀가 미처 다루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인데, 바로 경제라는 관점에 대한 시각이 부재한다는 것입니다.


 귀족과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라는 사회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만일 귀족이나 여성이 자신에게 기대되는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음을 주위에서 확신한다면 그 귀족이나 여성의 재능은 능히 발휘되고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귀족을 먼저 예를 들자면, 높은 지위를 차지한 귀족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부를 통해 손쉽게 구입하던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행위는 그들에게 기대되어지는 기존의 자산을 관리해서 더 큰 부로 증진시키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을 것이며(저자가 지적한 요구와 기대가 바로 그것인) 또한 그런 큰 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정치 행위 등 역시 귀족 출신의 예술가가 만들어 지기는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점은 여성 작가와의 비교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물론 린다 노클린은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며, 그렇기에 뛰어난 여성 문인의 예를 많은 위대한 여성 작가 중에서도 굳이 사후에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에밀리 디킨즈를 들고 있는 듯한데)  저자의 주장과 달리 글을 쓰는 행위 역시 미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처럼 많은 독서와 창작 연습이 수반되어야 하며 이런 행위들도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경향이 있지만 다행히도 책을 읽는 독자는(도서 시장의 소비자로 주로 중산층 이상의 남녀인) 미술품을 구매하는 콜렉터(미술 시장의 소비자로 주로 부유한 귀족 혹은 부유한 부르주와인 남성으로 이루어진)들과는 달리 훨씬 더 보편적이며 남녀의 성비에 큰 차이가 없고 적은 금액을 투자하는 다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이번 글의 첫 부분에서 언급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라는 면모가 미술 시장에서는 타깃 고객층을 좁히는 부정적인 영향이 강한 반면에 도서 시장에서는 특정 잠재고객의 취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적인 소재나 스타일 등을 잘 다룰 수 있는 여성 작가들은 (비록 동시대의 남성 작가에 비하면 당연히 많은 차별을 받았지만) 여성 미술가에 비해서는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효용성(경제적인 측면에서)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이런 점들이 아무래도 저자가 지적한 미술계에 상존했던 남녀 차별적인 시스템의 부당함이 문학에서는 좀 더 빈틈을 열어놓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는 최초 잡지에 게재된 이래 많은 미술 비평가 및 미술사 학자들로부터 페미니스트 예술사에 대한 최초의 실제 시도라고 불렸다고 하며, 그녀의 질문은 남성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 낸 기존의 위대한 예술가에 관한 개념들을 해체해 나가기 시작헀습니다. 예리한 통찰력과 위트 넘치는 글을 통해 미술사를 점거하던 백인 남성적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그녀의 행동은 과연 30년이 지난 다음 스스로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책의 후반부에 실린 <밀레니엄 시대의 여성 미술가들>의 내용들이 무척 기대됩니다. 




책에서는 성공적인 여성 예술가의 예로 '로자 보뇌르'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이전 <퀸스 갬빗>에 관한 글에서 이 내용을 언급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https://brunch.co.kr/@milanku205/780



아트북스 2기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아트북스에서 책을 지원 받았으며, 직접 읽은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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