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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11. 2022

<커피 일가>- 북리뷰

아트북스 2기 서포터스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글에서는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에 대한 북리뷰를 올렸었는데 이번 편 역시 또 다른 아트북스가 발행한 책 한 권에 대한 리뷰입니다.  



제일 처음 책을 펴 들면서 머리에 들어온 생각은 "아 느낌 있는 교토의 카페에 대한 소개인가 보다"였습니다. 교보문고 책 소개란에 올라온 내용도 '핫플레이스' '다시 방문하고 싶은 찻집' '변함없이 사랑받는 비결' 등의 문구가 강조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당연히 글의 문체나 구성 등도 흔한 여행 소개 책자일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3대에 걸친 커피전문점이 보여줄 한 편의 역사, 즉 멋진 'Saga'를 구성하기 위해서였는지, 만주 시절 창업자 부부가 처음 만나던 시절의 모습부터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글을 읽어 나가면서 약간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글을 구성하는 방식이 흔한 카페 소개 책자들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멋들어지게 쓰인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정이 많이 이입되어 있지도 않은 상당히 담백한 스타일이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책이 다 끝나가도록, 독자가 궁금해할 무엇인가 결정적인 성공요소에 대한 화려한 찬사라던지, 또는 그 오랜 기간 운영을 하다 보면 당연히 거치게 될 위기 상황에서 가족들이 보여줄 (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위기를 극복하는 극적인 모습에서 당연히 발견되곤 하는) 우애와 사랑 또는 미움과 다툼 등을 거치며 마침내 서로 훈훈하게 감정적으로 우리는 하나다 같은 결말은 등장하지 않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담백하고 솔직한 하지만 의외로 소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들이 전개됩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일본 영화를 보면서도 많이 느끼게 되는 부분인데, 특정 상황이나 감정에 관해서 인위적으로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를 삽입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객관적으로 투시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죠 이런 방법들이 결국 특정 상황에 처한 각 인물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개별 관찰자들에게 각자만의 느낌을 갖게 하고, 할리우드 스타일처럼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감정 이입되게 하기보다는 관찰자 각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감정을 찾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 도중에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들이 직접 전달되기도 합니다. 3대인 군페이의 말을 인용한 "하얗게 불태웠다(160쪽)" "헛된 경험은 없구나(169쪽)" 등이 그것인데요, 하지만 그것 마저도 긴 문장으로 지나 간 과거에 대한 주인공의 향수라던지 어떤 감정 등을 담은 말이 아닌 그저 자신의 경험을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바꾼 것인데, 이런 부분들은 글 전체의 맥락과 한 호흡으로 잘 어우러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커피 일가>를 읽고 났더니 어린 시절 읽었던 일본 무협 소설의 한 부분이 떠오릅니다. 주인공은 높은 수준의 무예를 연마하고 싶었는데, 어린 주인공에게 노 스승은 한 줌 씨앗을 주며 이것을 뛰어넘을 수 있으면 원하는 무공을 얻게 될 것이리고 이야기합니다. 담장 밑에 뿌린 씨앗에서 싹이 나고 나서 처음엔 주인공은 매일 그 싹을 쉽게 뛰어넘습니다. 싹은 점점 나무로 자라나고 주인공은 매일 높아지는 높이를 뛰어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이게 말이 돼 나하고 황당해했던 기억이 나는데, 왠지 <커피 일가>는 그런 황당하게 보이는 목표마저도 매일을 충실하게 살며,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설사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최소한 그간의 시간이 후회로 돌아오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우리를 속인 것은 삶이 아니라 삶에 베일을 씌워 환상을 갖게 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스스로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트북스 2기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아트북스에서 책을 지원 받았으며, 직접 읽은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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