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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14. 2022

Emotion Insights 2 - 노스탤지어

 정든 고향, 삶의 여정을 거치며 경험한 다양한 추억이 담긴 장소에 대해서 막연한 애정 또는 애타는 그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되돌아가고 싶지만 또한 간절히 바라지만 그저 바람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 내는 감정을 우리는 '노스탤지어' 또는 '향수'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이 글귀가 '향수'라는 감정의 정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노스탤지어는 그리스어로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지닌 노스토스(Nostos)와 고통이란 뜻을 지닌 알고스(Algos)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내가 떠나온 곳, 사랑하는 가족과 추억들이 담겨 있는 바로 그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귀향 욕구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고통의 감정을 안겨줍니다. 이러한 고통의 감정을 강하게 느꼈던 스위스 용병들이 집단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하자, 이들의 고통을 분석하던 중에 그들의 병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 체코를 떠나야 했던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에 정착해서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향수>에서 노스탤지어란 감정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는데요


“항수(노스탤지어)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대한 개념의 공간적 축소에 지나지 않는다.

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듯 누군가의 또는 무엇인가의 부재로부터 발생하는 그리움,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지칭하는 노스탤지어는 예술작품에서는 과연 어떠한 이미지와 또 소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을까요?





 영국의 조각가 페니 하디는 독특한 소재와 특이한 형상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세월(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 내는 부재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아련한 감정들을 멋진 조형물로 형상화해 내었습니다.


 그녀의 조형물을 통해 우리는 눈을 통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노스탤지어란 감정의 정체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lown Away>



시간이 흐르며 점차 흩어져 가는 우리의 육체와 정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귀환을 기다리는 또는 기다려야만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부재(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내가 소유할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일까요? 


사람, 혹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기억들이 지속적으로 불어오는 서풍처럼 매년 매월 그리고 매 시간 나와 나의 감정을 날려 보낸 후엔 상처받아 부서진 시간과 함께 부식되어 가는 남아 있는 자의 자아만이 홀로 고통 속에서 그렇게 흩어지고 엷어져 점점 사라져 갑니다.

 

페니 하디의 <Blown Away>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의 부재를 그리워하는 감정과 그렇게 한  지점으로 고정되어가는 시선을 통해 우리의 고전설화인 망부석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상실되고 난 이후, 다시는 움직일 수 없는 녹슨 나사와 기어만으로 남겨진 기계 덩어리는 거대한 형체를 유지한 채 남겨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한 줌 가루가 되어 바람 속으로 사라지게 될 마지막 순간까지, 대지위의 머나먼 한 점을 향해 마지막 아쉬움의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향수란 어떻게 보면 이처럼 한번 고정된 시선을 유연하게 옆으로 돌리지 못하는 보편적인 행동 패턴의 관성으로부터 나오는 감정은 아닐까요?


조각가의 또 다른 작품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점점 녹슨 나사와 기어로 분해되어 가는 탓에 더 이상 온기를 전하거나 서로를 애정의 손길로 어루만질 수 없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The Kiss>



넓은 들판에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사랑했던 지난날들은 흩어지고 사라져 버렸고, 흘러간 시간 속에서 서서히 멈춰버린 그들의 실존은 이젠 버려진 잔상이 되어 버립니다.


 영겁의 시간 동안 삭아져 내리고, 거센 바람에 뜯겨나가고, 쏟아지는 비를 맞고 녹슬어 버린 이 아련한 몸뚱이들의 잔재,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놓지 못한 채 이렇게 아련하게 마주하고 있는 쇠락한 덩어리, 





이 조각 작품에서 누군가의 부재가 느껴지시나요?






페니 하디가 자신의 조각 작품인 <Blown Away>를 통해서 


"너는 어디 가고 나만 홀로 남아, 그대로 녹슬어 가는...." 


이라는 노스탤지어의 감정을 정확하게 형상화했다면, 우리는 소리를 통해서 이런 감정을 드러낸 위대한 음악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대가였던 영국의 작곡가 헨리 퍼설은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에서 홀로 사라져 가는 바로 그 격한 감정을 아름다운 선율에 실어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귀를 열고 소리가 들려주는 감정을 각자의 내부에서 찾아내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디도와 에네이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트로이가 멸망한 이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 트로이의 장군 에네아스는 풍랑을 만나 카르타고 해안에 도착하게 되고,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을 시기하는 신들의 장난으로 에네아스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라는 제우스신의 거짓 명령을 받고 디도와 작별을 고하고 떠나게 되고, 홀로 남은 디도 여왕은 목숨을 끊고 마는데, 이 마지막 장면에서 여왕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홀로 남아 그대로 녹슬어 가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감정" 


을 아리아 "내가 땅에 묻힐 때"를 통해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소리로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TV6F3lTU7o



이 아리아의 가사 중에 감정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외치는 "Remember me"인데요,


나만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 역시 노스탤지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또 다른 요소일까요? 




누군가의 부재를 그리워하거나, 내가 잊힐까 봐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두려움은 왠지 '시간의 무한성'에 기인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홀로 남은 혹은 남겨진 상태가 무한히 지속되리라는 불안이 없다면 노스탤지어란 감정 역시 곧 수그러들게 될 것 같은데요 이와 같이 시간의 무한함과 노스탤지어의 감정적 관계를 상징으로 표현한 미술 작품이 있습니다.



<The Nostalgia of the Infinite - 무한의 향수> , Oil on Canvas, 135.2 × 64.8 cm, 모마 소장



이태리의 화가인 지오르지오 데 끼리코 (Giorgio de Chirico)는 초현실주의의 초기 단계인 형이상학파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해질 녘 무렵 거대한 탑의 아래에 두 명의 사람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서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사조를 설명하는 단어 중에 데페이즈망이 있습니다. 나라나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던 이 단어는 점차 일상 속의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후에 서로 이질적인 사물 사이에 병치시켜서 일상적인 관계 속의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의 기법이 되어갑니다. 


나라나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은 바로 노스탤지어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현실 속의 사물을 뒤틀어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의 기법이 되어 버린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국 노스탤지어란 감정은 무한한 시간 앞에서 자꾸만 미래가 아닌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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