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또는 자신도 모르게 멋진 선율의 음악이 귀로 흘러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할 수는 없지만 기분 좋은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렇듯 미술과 음악은 편안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일게 하는 우리 삶의 중요한 재료들인데요,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이에 관해서 위대한 미술가들이 남긴 말들이 있는데요,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 김환기'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겐 알파요 오메가였다 - 크리스토퍼 로스코(마크 로스코의 아들)'
"추상화는 음악처럼, 좋아하게 되든 싫어하게 되든 일단은 잠시 동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 잭슨 폴락'
이런 대가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미술가들이 음악에서 창조의 영감을 얻었고 그렇기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19세기 영국의 문예 비평가인 Walter Pater는 일찍이 이런 미술과 음악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말을 통해 인간의 감정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음악이란 장르에 미술가들이 얼마나 애정 어린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All art constantly aspires towards the condition of music.”
고요한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화음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미쳐 멜로디를 알아채기도 전에 심장 박동보다 더 빠르게 쿵쿵거리는 비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헤드뱅잉을 하게 하는 이런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다양한 요소들이 음악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면, 미술이 음악을 향해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극히 자연스러운 방향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비엔나 출신의 화가 타헤들(Tahedl)은 다양한 음악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자신의 관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련의 시리즈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브르크너의 대표작품인 <교향곡 4번 - 낭만적>에서 읽어낸 낙관(optimism)의 감정을 다음과 같은 추상적 이미지로 치환해 내었습니다.
<브르크너 교향곡 4번 - 낭만적> 타헤들
이 작품에 영감을 준 브르크너의 교향곡은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시죠
교향곡에 붙은 낭만적이라는 부제는 작곡자 브르크너가 스스로 붙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1악장은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처럼 고요한 현의 트레몰로로 시작합니다. 약간은 불안한 듯이 떨리고 있는 현들 사이로 혼이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려는 듯 갑작스럽게 제1 주제를 연주하며 등장하고 현이 좀 더 커진 음량을 가지고 안정감을 찾으며 서서히 하강하는 동안 관들이 하나 둘 등장해서 총주로 점진적인 상승을 하며 자신감 넘치는 제2 주제로 넘어갑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음악은 우리의 기분을 심오한 고요의 사원으로 가라앉히고 그러다가 격정이 넘치는 풍랑의 대양 위로 날아오르게 만드는데, 이를 통해 불안, 흥분 그리고 즐거움의 감정이 교차되며 증폭되는 순간에 접어들면 음악이 만들어 낸 감정의 극적인 고양이 이루어집니다.
일부 음악학자들은 이 <교향곡 4번 - 로맨틱>의 도입부 주제가 중세도시에서 아침을 알리는 시청의 종소리에 도시의 성문이 열리고 말에 탄 기사들이 그 열린 문으로 숲 속을 향해 돌진해 나갈 때 숲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았던 마크 로스코는 그의 선배 세대인 낭만주의자들에 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국적인 것에 열망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초월적인 것이 신비하고 익숙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신비하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 반드시 초월적인 것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한다"
후기 낭만주의의 경험이 만들어 낸 흥분이 전쟁 등으로 인해 세계의 변화에 의해 가라앉기 시작한 이후,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모더니스트들의 눈에는 성숙하지 못한 방랑자로 비쳤던 낭만주의자들은, 하지만 자신들의 시대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었던 순간엔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모험에 대해 무척이나 낙관적이었으며 그런 행위나 시대적 분위기를 '로맨틱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브르크너를 통해서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위에서 보여드린 Tahedl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면, 그림에서 보이는 터져나가는 듯이 거칠게 표현된 다양한 색의 조합은 <교향곡 4번>의 낭만적인 음향에 내재되어 있던 브르크너의 사상적 중추인 어두움을 뚫고 일어서는 인간이 가진 낙관적인 기쁨이 분출되는 순간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안한 느낌을 갖는 어두운 색조의 바탕 위에 점차 환희를 표현하는 밝은 색조들이 적층적으로 쌓아 올려져 마침내 그 중앙은 하얗고 밝은, 마치 빛이 어둠을 뚫고 폭발하려는 순간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화가의 그림과 브르크너의 음악이 가진 감정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공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이렇듯 낙관이라는 감정은 시각을 통해 전달하는 미술보다는 청각을 통해 전달되는 음악에서 좀 더 많이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낙관'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베토벤마저(그의 낭만성은 투쟁을 통해 억압된 자아가 현존을 넘어 새로운 창조로 향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을 텐데요)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에서 느끼게 되는 긍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그의 <교향곡 6번 - 전원>에서 묘사하고 있는데요, 작곡자 스스로가 시골의 전원풍경에서 느낀 즐거움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1악장은 즐거운 새들의 소리와 활기차게 흐르는 시냇물의 리듬 등을 통해 신체적인 제약으로 수축되어 있던 작곡가의 감정이 반전을 이루며 내일을 향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81VOP6dEV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