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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17. 2022

Emotion Insights 5 - 걱정 혹은 불안

걱정과 불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의 앞날이 걱정인 부모님, 21세기에도 끊임없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남편을 떠나보낸 가족, 이런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되는 감정은 바로 걱정과 불안이겠죠.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항상 이렇게 걱정과 불안이 닥쳐오면, 신에 대한 믿음이 있던 없던지 간에 좀 더 확실한 미래를 결정지어 달라는 각자의 간절한 바람을 절대적인 대상을 향해 외치곤 했습니다. 기도란 바로 그렇게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요.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였던 벨리니는 이런 보편적인 인간의 행위가 보여주는 기도라는 특정 행동에서 불안과 걱정이라는 감정을 읽어 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오페라 <노르마>의 1막에 여사제인 노르마가 신을 향해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통해 이 감정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신을 모시는 사제가 가져야 하는 성스러움과 자신의 고국을 통치하러 온 원수를 사랑하게 되는 세속적인 욕망, 이 두 개의 서로 상반된 감정은 주인공의 고요하던 내면에 커다란 충돌을 일으키고, 그렇게 부서져 버린 정적의 파편은 잔잔한 내면의 호수 위에 떨어져 풍덩하는 물결을 일으키게 됩니다.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감정의 흥분 상태, 바로 이런 심리적 갈등의 지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그 무엇을 벨리니는 정확하게 잡아내어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습니다. 


바로 1막의 "Casta Diva - 정결한 여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g4L5tcxFcA


잔잔하고 부드러운 리듬으로 시작하던 아리아는 사제들의 웅얼거리는 합창 소리 위로 점차 불안하게 흔들리는 듯 고음으로 조금씩 상승을 시도하다가 덧없이 하강하기를 반복하며 솟아오르다가 꺼져버리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불안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더해질 때 우리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들인데 스웨덴의 사진작가 가브리엘 이삭(Gabriel Isak)은 실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초현실적인 순간을 포착해 냄으로서, 사진 속의 대상 속에 잠재적으로 내재된 불안함을 차분한 이미지를 통해 보여줍니다. 


<Sinking into Depths Unknown>


고요한 수면 위에 얼굴만 떠있는 듯한 모습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눈을 감은 채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델의 실재와 그 얼굴이 수면에 반사되어 만들어 내는 허상이 묘한 대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하늘의 푸른색과 눈을 감고 있는 얼굴에서 고요함과 평온함을 갈구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만, 수면에 반사된 그렇기에 깊이를 모르는 물속을 향하고 있는 얼굴 아래로 점점 더 짙어지는 푸른색은  그 속을 알 수 불확실함을 암시하며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묻혀있던 불안의 잠재의식을 일깨웁니다. 구름 덮인 하늘은 그런 불안감을 더욱더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볼스라는 가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독일의 화가 알프레트 오토 볼프강 슈체의 그림 속에는 나치와 나치가 저지른 잔혹한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혐오감이 주된 주제로 등장하는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이 그림들은 그렇기에 마치 악몽 속에서 나치에게 고통받는 듯한 작가 자신의 불안감을 강하게 표출시키고 있습니다.



볼스 <Painting> 1946-47, Oil on canvas,  81 x 81.1 cm



수용소에 갇혀 있던 시절, 살아남기 위해 곰팡이 핀 빵을 먹어야만 했던 작가의 쓰라린 경험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바닥에 떨어진 빵인 듯 테두리가 둘러진 가운데 부분의 사각형 안에는 푸른색 물감이 군데군데 떨어뜨려진 후 무작위적으로 번져 나가고 있는데, 작가는 자신이 실험하고 있던 긁는 표현 방법을 사용해서 푸른 물감의 번져 나간 끝부분에 긁힌 흔적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표현된 푸른색은 작가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수용소 시절의 곰팡이들을 상징하며 씻기지 않는 불안감을 자아내는 듯합니다. 





한 밤중에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말을 달리는 젊은 아빠가 있습니다. 일정치 않게 흔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더할 수 없는 불안감을 자아냅니다. 열이 나는 아이는 자꾸만 무엇인가가 보인다는데 아빠는 위로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를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음악을 듣는 우리는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Cbo3L91xc



괴테의 시 <마왕>에 곡을 붙인 이 가곡을 통해 슈베르트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소리로 묘사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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