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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25. 2022

Emotion Insights16 - 두려움 / 근심

 푸치니는 몰라도 Nessun Dorma는 안다. 


오페라보다 더 유명한 주인공 칼라프 왕자의 영웅적인 아리아가 백미인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자신과 결혼하고자 하는 왕자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다 맞춘 사람과 결혼하겠노라는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를 풀며 끝내 투란도트의 사랑을 획득하는 칼라프 왕자 간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스토리를 푸치니 특유의 매력적인 선율을 통해 끌어내고 있습니다.


 스토리에 흥미를 더해주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팽팽한 긴장감은  2막에 등장하는 투란도트의 아리아 "In questa Reggia"에서 그녀가 왜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왕자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통해 점점 고조되어 가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SdfvMBvLm_o



투란도트는 수천 년 전 자신이 현재 서 있는 바로 이 궁전으로 쳐들어 온 타타르 왕에 의해 치욕을 당하고 살해된 선조 로우링 공주의 비극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계획했던 것이었습니다.


푸치니는 이렇듯 폭력적인 남성들을 향해 표출되는 증오심과 동시에 자신의 이런 결심을 깨지 않고 지킬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투란도트의 두려움을 극적이고 변화의 폭이 넓은 멜로디와 약간은 투박하게 느껴지는 강력한 리듬을 통해 다이내믹한 소프라노의 아리아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 아리아 내내 극적인 에너지와 흔들리는 불안감의 두 가지 감정이 교차되는데 오페라의 결말에 도달하면 얼음처럼 차갑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감정의 장막이 녹아내리면서 그동안 쌓여온 증오심은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두 남녀가 하나가 되는 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물감을 바닥에 뉘어 놓은 캔버스 위에 붓고, 뿌리는 등 독특한 기법으로 새로운 회화의 영역을 개척한 잭슨 폴록은 1950년 “새로운 미술은 새로운 기법을 필요로 한다. 현대 화가들은 르네상스나 과거 문화의 케케묵은 형태로 비행기, 원자폭탄, 라디오가 있는 우리 시대를 표현할 수 없다"라는 선언과 함께 동시대의 이슈에 대한 작가의 감정 표출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회화에 표현해 내고자 합니다. 



<one : number 31>



에너지, 긴장, 극적인 효과로 충만한 <one : number 31>은 잭슨 폴록의 그림 중 가장 큰 그림에 속하는데, 그는 1950년에 석 점의 거대한 그림을 연이어 제작하고 있으며, 뻣뻣한 붓과 막대기로 물감을 바르고, 쏟아붓고 튀기고 떨어뜨려 그만의 독특한 회화 이미지를 완성시켜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950년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던 역동적인, 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불확실성이 큰 시대였는데, 작가는 이런 시대 배경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던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에 담고자 했고, 폴락은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열어 가는 데 성공합니다.


이 작품에 담겨있는 폴락이 가지고 있던 시대에 대한 감정은 바로 원자폭탄 등이 불러온 인류의 멸망에 관한 이전 세대와는 다른 거대한 규모의 공포감과 두려움이었다고 합니다.


거대함 속에 담겨있는 불확실한 불안감과 두려움, 여러분도 느껴지시나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충격적이고 극적인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마치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럴 경우 그 순간에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와 같은 경험들은 우리의 기억 깊은 곳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 맙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위 작품은 스페인 반란군의 봉기가 일어나자 그 보복 조치로 당시 스페인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군이 마드리드의 양민을 학살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은 이미 쓰러져 죽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구와 마주하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는 자신이 죽을 차례가 다가오는 공포에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떨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캔버스를 가득 채워나갑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흰 상의를 입은 사람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양팔을 들고 있는데, 그가 입고 있는 노란색 바지가 땅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이 흘린 피와 함께 그림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는 밋밋한 색감 위로 극심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화가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강조하기 위해 어두운 배경 위에 공포에 가득 찬 표정을 두드러지게 밝은 빛으로 비추며 극적인 대비를 이끌어내는데, 밝게 강조된 두려움에 직면한 주인공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자신만의 두려웠던 순간들을 상기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서히 그림 속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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