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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24. 2022

Emotion Insights15 -성적욕망 / 무아경

모든 동물이 갖고 있는, 그중에서도 인간인 우리가 가장 관심이 많은 그런 감정. 

하지만 그렇게 관심이 많아도 겉으로 는 그것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혹은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이중성을 지닌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성적 욕망인데요, 우리에게 내재된 감정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강렬하면서 동시에 가장 은밀한 감정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적 욕망이 발현되는 순간의 모습들이 독특하게도 종교에 깊이 심취하거나 또는 명상 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무아경의 느낌과 상당히 유사하게 묘사되곤 합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대가인 베르니니, 그는 로마에서 교황의 후원 아래 건축과 조각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 한 조각 작품이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법열 (Ecstasy of Saint Teresa)


이 작품은 16세기 스페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테레사의 "영혼의 성"이라는 저서에 나오는 그녀가 경험했다는 신비롭고 영적인 환영을 구현한 것으로 알려진 조각 작품입니다.  


'나는 어느 날 황홀경에 빠지면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다. 무언가가 나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는데, 나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의 고통이 따랐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라고 수녀 테레사가 직접 밝히고 있는 무아지경 속 ‘천상의 환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반쯤 감겨있는 눈 그리고 살짝 벌어진 입술 등이 성적 욕망이 발현된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얼굴 표정과 상당히 흡사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성(聖)과 성(性) 사이에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요?


작품의 제목에 쓰인 엑스터시(무아지경)이란 의미에 대해서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엑스터시(extase)는 그리스어 어원에 의하면, '자기의 바깥에 있음을 뜻한다 : 자신의 위치 (stasis)로부터 빠져나가는 행위, '자기의 바깥에 있음은 과거나 미래로 탈출하는 어떤 몽상가처럼 현재 순간의 바깥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로 엑스터시는 현재 순간에의 절대적 동화이며, 과거와 미래의 완전한 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이 번식 행위와 상관없이 성적 욕망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기 번뇌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무아無我에 이르고자 하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찰나의 순간이지만 성적 욕망이 발현되는 그 만족감을 많은 사람들은 엑스터시, 즉 무아에 도달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전체적인 맥락에서 내려본다면 베르니니의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는지도 조금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표현하기 조차 힘들었던 성적욕망( 엑스터시)이란 감정을 캔버스 위의 예술작품으로  옮겨 놓은 위대한 예술가로 구스타브 클림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 다나에 - Danae >, 1907, Oil on Canvas,  77 x 83 cm



풍만한 곡선미, 금빛의 속이 비치는 얇은 망사 천, 자신의 몸 한가운데서 환희를 느끼는 듯한 모습 등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관능미는 그림의 중앙부에 위치한 허벅지와 그 속에 가려진 은밀한 신체 부위로 우리의 시선이 모이게 끔 유도하고 있는 작품의 구도에 의해 아주 강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멈춰 선 시간 앞에서 점차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한 다나에의 표정은 제우스가 그녀의 몸안으로 들어오는 무아지경의 순간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적 욕망이라는 감정을 시각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황홀경에 빠진 듯한 여성의 표정을 등장시켜야만 할까요?


천재적인 사진작가였던 메이플 소프는 그런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렌즈에 두 송이의 마주한 튤립을 담아내며 새로운 감정의 지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Two Tulips  - 1984, silver gelatin 61*58.5 cm



꽃들 사이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이 사진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절망, 끝없는 갈망, 긴장, 절정을 꿈꾸는 내면의 욕망 등이 엄청난 에너지로 분출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녀린 한쌍의 튤립 꽃으로 이런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드러내는 작가의 천재성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이 사진 작품처럼 더 이상 가까이할 수 없기에 끝없는 갈망과 엄청난 크기의 성적 욕망이 분출되는 순간을 노래한 곡이 있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 트리스탄의 주검을 안은 채 절규하는 이졸데의 아리아 "Mild und leise - 부드럽고 온화한"이 바로 그것인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j8enypX74hU




음악 역사상 가장 농밀한 사랑 또는 어두운 사랑을 보여주는 이 오페라에서 두 주인공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사랑하기에 죽음을 선택하려 했으나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고 점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사랑하는 트리스탄의 주검 앞에 홀로 선 이졸데는 현실세계에서 그들을 막아선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새롭고 영원한 사랑으로 향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에 대한 환희와 절정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극적인 해방감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높이를 지닌 감정의 파도가 음악을 듣는 우리의 이성을 뒤덮고 혼란하게 흔들어 버리는 아주 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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