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Jun 07. 2019

사랑도 상실감도 학습이 필요해

하나레이 베이를 보고

 브런치 무비 패스에서 선택한 영화 '하나레이 베이'를 보고 왔습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어느 날 하와이로 서핑을 하러 간 아들의 죽음을 듣고 하와이로 날아가는 엄마 '사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치는 아들을 잃어버린 바로 그 해변으로 10년을 한결 같이 년 찾아갑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아들을 삼킨 먼 이국땅의 바다를 저 멀리서 지켜보며 앉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본에서 온 죽은 아들의 또래 일본 청년 2명을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일본인 외다리 서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큰 격랑이 몰려옵니다.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서있었을 거대한 고목을 있는 힘을 다해 밀어보고, 파도치는 바다에 뛰어들어 하염없이 무언가를 찾아도 봅니다.

  그리고는 끝내 그토록 외면했던 아들의 핸드프린트를 받아 쥐고 자신의 손바닥과 마주하며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사치에게 아들은 마약중독으로 다른 여자의 품속에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기고 간 유산입니다. 그녀에게 남편은 득보다는 실이 많았던 관계이고, 남편에게 육아의 책임을 묻는 상황에서 아내를 뿌리치며 마약에 취해 홀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내게 남겨둔 아들을 잘 키워보겠노라고 고군분투했겠지만, 기억에 남은 아들의 모습은 기껏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빨래하나 제대로 못해주냐'는 불평과, 하와이에 가야겠으니 돈을 내노라는 요구 정도입니다. 그녀 역시 하와이에 가기 위해 보드와 옷을 사들고 와서 날 좀 봐달라는 아들에게 그저 '응'정도의 대답만 하고 있고, 아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시키는 냉랭한 엄마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줄 전화 소리가 화면 가득히 들어 차기 시작합니다. 약간은 떨리고 있는 카메라는 울리고 있는 전화기를 점점 롱샷로 잡으며, 하와이의 병원 영안실로 무표정하게 걸어가고 있는 사치의 모습으로 연결시킵니다.


 상실은 무언가 충족되었던 게 사라져 가는 감각입니다. 영화 도입부의 '사치'에게는 아들과 엄마 사이의 충분한 교감이 없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처 아들을 잃은 상실감, 즉 슬픔이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딘가 허전함이 그녀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와이까지 날아와서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정확히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숙함을 찾기 위해 피아노가 있는 바에 들러 피아노 연주를 하지만 역시 허전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느덧 친숙해진 하와이의 경찰과 아들 사고 당시 수습을 도왔던 하와이 여인에게서 지속적으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충고를 듣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아들의 핸드프린트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왜 필요한지 조차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죽었을 당시의 또래 정도의 일본 남자아이들을 보게 되고, 이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이 찾고 있던 의문에 다가서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일본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외발 일본인 서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사치에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토록 그녀가 찾아 헤매던 대상에 대한 실마리가 던져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내가 찾고 있는 답이 그 외발 서퍼에게 있다는 듯이  해변을 미친 듯이 이리저리 헤매며 외발 서퍼를 찾아 나서게 되고, 그러는 사이 하와이의 강한 모래 바람과 그 오랜 시간을 서있었던 하와이의 고목, 그리고 하와이의 바다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순간 영화에서는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뒷 배경에 외발 서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다니는 것들은 정녕 우리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인걸까요?


 네, 그녀는 끝내 그녀가 찾고자 하는 외발 서퍼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자 했던 것은 허상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들에 대한 자신도 미처 몰랐던 그녀의 감정이었던 것이니까요.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하와이 여인의 품에 안겨 '나는 아들을 미워했지만 그래도 사랑했었다고' 그렇게 아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난 바로 그 시점부터 그녀는 정확하게 자신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내 받아왔던 아들의 핸드프린트에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마음속을 정리하게 됩니다.


 이렇듯 영화는 느리게,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인지하기까지는 상실감을 슬퍼할 수도 없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연출에 대한 평가는 5점 만점에 2.5이며

 여주인공의 연기는 5점 만점에 4점을 주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Where's the new Alladin fr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