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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l 11. 2019

이브의 선택?

영화 Zoe를 보고

 젖혀진 커튼 사이를 비집고 날아 들어온 햇살은 자신의 자리를 발견했다. 그녀의   살짝 드러난 하얀 목덜미 위에서 그들은 흥겨운 왈츠의 스텝을 밟아 대고 있는 중이다. 한바탕 신나게 추던 춤이 시들해졌는지 점점 높이를 낮춰 밀고 들어오면서 어느덧 내 콧등 위까지 점령해 버렸다. 내 눈을 까불거리는 그들의 흔들림에 눈 앞이 점차 뿌였게 올라오며,  꽃향기처럼 살며시 스며들던 그녀의 실루엣은 점차 흐릿해지더니, 이젠 손끝으로 옯겨진 감촉만으로 그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보트 선착장에 서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어던지며 얼음장 처럼 차가운 호수로 뛰어들었다. 사실 내가 먼저 뛰어들었고, 난 물이 차지 않다고 웃으면서 그녀를 속였던 것 같다. 이제는 산장의 벽난로 앞에서 손을 맞잡은 채 서로의 얼은 몸을 비벼서 녹이고 있다.

 나는 결코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 역시 영원히 내 곁에 머무를 것이고.

 

 왜냐하면 --------------------------

 왜냐하면 --------------------------

              ,,,,,

              ,,,,,

              ,,,,,,



   




 이렇게 Happily ever after 할 것만 같았던 영화는 갑자기 그녀가 차에 치이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조, 정신 차려. 잠깐만 기다려. 내가 곧 고쳐줄게"

 "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조, 잠시 동작을 중지시켜야 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영화 Zoe의 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처음 영화를 보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은 인조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SF물이라고 생각했으며, 블레이드 러너 이후로 많이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또 하나의 변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일본 SF 만화 등에서 많이 보여주는)


 영화 마케팅 역시 SF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창조자와 피조물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포커스를 맞추는 것처럼 보였고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사랑이 아니라 SF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죠. (어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랑은 조금 무겁지 않나요?)


 그런데 실제로 본 영화는 성년에 달한 대부분의 남녀가 고민하는 가장 인간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습니다.  바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감독이 생각하는 또는 보여주려고 하는 '진정한 사랑'에 관한 소나타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1악장의 '소나타 형식'에 SF를 도입하고 있었던 겁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Allegro의 빠른 템포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 사용되는 주된 소재들에 대해서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많은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TV광고의 포맷을 빌려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내레이션은 객석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를 관객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에 광고를 하는 사람들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소비자들처럼 느끼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광고(영화 속의)를 보고 있는 우리들은 점차 영화 속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고, 서서히 주인공들과 감정이입이 시작됩니다.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지요? 그렇습니다. SF의 포맷으로 진행되지만 처음부터 감독은 로맨스 영화라는 방향을 설정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만일 보편적인  SF 영화였다면, 감독은 화면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철학에 대해 관객들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고민하게 만들었겠죠. 


 광고의 내레이션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 주제에 대해서도 가끔씩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our experience as humans is connection"

바로 Human과 connection입니다.

 



 본격적으로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악장은 느린 Adagio로 바뀌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좀 더 편안하게 주인공들을 살펴볼 시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조는 남녀 간에 사랑의 정도를 점수로 알려주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 낸 회사의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함께 일하는 연구실의 총책임자인 콜에게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그도 나에 대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합니다.


 콜은 혼자 살고 있는 외로운 중년입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Vinyl Record를 틀어서 자신의 외로움을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향수로 달래려고 합니다. 도움이 될까 싶어 화이트 와인을 한잔 따르지만, 어쩔 수 없이 1회용 냉동 라쟈냐를 꺼내서 위에 덮인 비닐을 포크로 뽕뽕 뚫고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그 채로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얼른 신발 끈을 묶고 다시 사무실로 달려갑니다.

 헤어진 아내와 살고 있는 어린 아들을 만나게 되면 그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아들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한 캠핑과 지난주에 아들이 그린 그림에 관해서요.

"Its really good.

Its really good.

Did you just do that one?"

 

 이런 장면들을 보다 보면 감독이 이전 영화부터 왜 집요하게 영국 출신의 남자 배우들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울림 좋은 목소리로 아이를 향해 다정한 이야기를 해주는 남자, 그것도 두 번을 반복해서. Its really good.


 조는 자신도 머신의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콜에게 허락을 구하고 테스트를 한 후 콜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과 콜 사이의 관계지수를 뽑아 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조는 콜에게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보네요.


 근데 어떻게 이런 일이! 광고에 나오는 여성 내레이터는 머신은 틀릴 수 없다고 그렇게 강조를 했는데 둘 사이의 관계 지수는 zero가 나옵니다.

너무나 황당해하는 조,


 사실 여기까지는 제 글을 읽지 않더라도 영화의 광고에서 유추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내용에 대한 전개보다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이미지 위주로 영화평을 이어 가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조인간을 synthetic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테틱이 뭔가요?


천연고무 - Natural Rubber

인조고무 - Synthetic Rubber


 그렇습니다. 신테틱은 천연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체 또는 물질을 대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천연 인간이라면 조는 이 천연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보통의 SF에서 등장하는 Robot이나, AI들 과는 다릅니다.

인간과 구분 지어지는 새로운 개체 (Robot, AI)가 아닌, 우리들 중 하나를 대체할 무엇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무엇을 도대체 우리 중에 누구를 대체하기 위해서 이런 synthetic이 필요했던 걸까요?


 영화에서 말하려는 사랑은 

 Theyre not going to leave you is

important, would be important to me

 그러니까 서로를 떠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그런 관계였던 것이었습니다. 콜은 누군가가 자기를 떠난 던 경험에서 상처를 갖고 살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 감정을 이해하고, 내 말을 들어주고 그리고 내 옆에 머물러 줄 파트너였던 거죠. 

 그리고 그런 파트너를 위해 그녀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그녀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그리고 영원히 그녀 곁에 머무르고 싶었던 남자이고요.  



 

 사실 주인공의 이름이 조인 것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습니다.


 이 Zoe란 이름은 Eve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어로 생명 또는 존재란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히브리어의 이브(하와)에서 유래가 된 여자 이름입니다 ) 아담과 이브의 바로 그 이브!

 우리는 이제껏 남성 위주의 역사를 살아왔고 그래서 항상 최초에는 남자가 있으며 여자는 남자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남자의 보조 수단으로 따라 나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최초에 신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악과를 먹는 그 행위가 남자를 배신한 여자의 기만이 아니라 신의 부속물에서 벗어나 인간의 세계를 열게 되는 선택과 의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조를 만들고 그리고 조를 통해 얻어진 기술로 남성 신테틱 애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 전체의 구성 및 흐름은 남과 여 그리고 창조자에 대한 무거운 철학적 잔상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페미니즘적인 프레임이 아니라, 감독이 생각하는(또는 바라고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정의 내리기 위해서 색다른 배경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러한 배경을 설정하기 위해서 현실의 모습보다는 SF적인 상상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그러니까 감독의 가정에 딱 들어맞는 조건을 지닌 존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 몸에서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는 거라고 합니다. 호르몬이 우리의 감정 주변 상황 이런 것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것이라면, 사랑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을 뒤 흔들 필요가 있습니다.

시각, 청각, 촉각 그리고 공감각. 이런 감각들을 자극해서 사랑에 이르게 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재미있는 게임장이 등장합니다. 온 벽과 천정이 디스플레이로 되어 있고, 그 방안에 사람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다양한 형태와 색을 가지고 디스플레이로 표현해주는 게임방입니다. 

 목소리를 내어 봅니다. 그렇지요. 처음에는 마이크 테스트를 해야 될 테니 서로 아! 아! 하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목소리를 키워 보고, 그러다가 여자가 먼저 리듬과 선율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Figaro, Figaro, Figaro 라며 유명한 노래를 한 소절 불러 봅니다. 


롯시니의 세빌리아 이발사 가운데 피가로의 아리아입니다. 

https://youtu.be/YwHp9mXvgko


 그러자 콜도 화답을 합니다.  조가 피가로를 세 번 외쳤으니 콜도 이렇게 세 번 다정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비틀스의 명곡 미셀의 한 부분을 들려주네요.


Michelle, ma belle
These are words that go together well
My Michelle

Michelle, ma belle
Sont l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That's all I want to say
Until I find a way

- 중략 -


https://youtu.be/WoBLi5eE-wY





 "당신을 사랑해, My  Beautiful

  이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야" 


 감독은 영화에서 사랑은 감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책에서 배우고 머리로 하려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지만 현실의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을 그렇게 하려고 또는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일까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아닌 서로가 알고 있는 노래를 불러주고,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점차 손이 상대의 얼굴로 올라가고 그러다가 서로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사랑은 경험으로 알고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에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콜과 조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이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키스를 하며 조가 콜에게 말하죠 I have memories, but Im not sure I know what to do.

콜은 사랑스럽게 조를 보며 속삭여 줍니다. Dont worry. Just be. Dont think.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보니 영화는 마지막 3악장인 Allegro로 속도를 높여 나가면서 2악장의 마지막에서 확인시켜주었던 사랑의 정의에 대해 다시 반복 해서 보여줍니다. (3악장은 Rondo 이니까 반복은 당연합니다 물론 조금씩 변주를 해나가면서요.)


 서두에 밝힌 것처럼 달달한 사랑 이야기였던 이 영화는 열린 결말로 아름답게 끝을 맺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정도로 마지막 Allegro부분에서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너무 완벽한 결말을 꿈꾼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베토벤이 소나타 형식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도 형식에 묻힌 음악이 자꾸만 지루해져서 일까요?) 


 현재 누군가와 달달한 썸을 타고 있는 분이라면, 또는 그런 상황을 꿈꾸는 그래서 현재로는 외사랑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본인의 감정이 영화 내내 격정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짜릿하고 눈물 나고, 


 하지만 그 외의 특히나 머리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남성분이라면 세상에는 훨씬 여러분께 적합한 SF가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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