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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05. 2020

영화 <사이코>와  호퍼의 isolation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의 주요 배경이 되는 빅토리안 하우스는 에드워드 호퍼의 <철길 옆의 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오래된, 그래서 지적이고 수준 높은 대화를 하기 위해 웬만한 영화 정보라면 다 꿰뚫고 있는 영화팬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그렇다면 이제는 당연히 여겨질 만한 이 스토리를 왜 지금? 하고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요,


첫째,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커진 게 몇 년 안되었다 보니, 이제야 도대체 왜?라는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둘째,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이라는 책을 읽게 되어서입니다. (나온 지 오래된 책인데 하도 누가 보라고 압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한)


독일 함부르크에서 1990년대에 영문학을 강의했던 작가의 책은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은 지식인들이(최소한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주장하는)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그려내었기에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이 책에서 언급되는 "교양"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지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많은 잡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됩니다.


뭐 그런 생각이나 움직임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도 한때 그런 생각에 많이 휘둘렸던 것 같고, 그 당시에는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가는 것이 좋은 사람들한테, 그 학습의 과정이 즐겁지 않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단지 지적인 대화를 위한 정보 습득이라는 학습방법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이런 생각이 히치콕과 에드워드 호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흥미를 갖게 해 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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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Oil on Canvas  61 cm x 74 cm



호퍼는 이 작품을 그리기 이전에, 이 작품과 유사한 풍경이나 느낌들을 그려낸 다양한 습작과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Two Studies: Victorian House with Porch and Architectural Detail, 1920  Fabricated chalk on paper

 

American Landscape 1920  Etching, 18.7 × 31.4 cm ( 35.2 × 46.8 cm)


1920년 스케치와 판화 작업에서, 당시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빅토리안 하우스와 그 집들을 담고 있는 풍경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는데, 빅토리안 하우스는 영국 빅토리안 왕조에서 시작된 건축 양식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던 빅토리안 시대의 경제적 부흥과 맞물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건축물 형태입니다.


모더니즘 형태의 새로운 건축물들이 등장하기 이전, 영국과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던 영연방 등의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기에, 미국에서도 상당히 흔하던 건축 양식입니다. 물론 <철길 옆의 집>과 <미국 풍경>에 보이는 집은 그 건축에 관한 미학적 디테일은 상당히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 풍경>에서 빅토리안 하우스와 철길은 소와 숲이 만들고 있는 목가적이고 자연적인 이미지와 상충되는 또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문명화 또는 세속화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런 이질감은 다음의 그림들에서 조금씩 더 강화되며 단절감(isolation)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Study of a Landscape with Train Passing Houses, 1920 Fabricated chalk on paper 


The Lonely House, 1922  Etching  20 × 24.8 cm (34 × 42.4 cm)


점차 제목에서부터 Lonely라는 단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달리는 기차가 시야를 흐리게 하며, 기차의 뒤로 펼쳐지는 풍경이 실제보다 더 멀리 있는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House at Tarrytown, 1923  Drypoint   20 × 25.1 cm  (23.2 × 26.7 cm)


  버려져가는 느낌이 드는 철로 옆 마을 풍경이 주는 느낌, 하지만 여러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아직도

isolation이란 감정이 완벽하게 드러나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데, 도시에 거주하며 광고 일러스트 일을 하던 에드워드 호퍼는 왜 아름답고 풍요로워야 할 전원풍경에서 단절감이라는 이미지를 읽어내려고 하고 있었을까요?


그 스스로가 지독한 염세주의자나 비관론자이었을까요? 


Railroad Crossing, 1922~23 Oil on Canvas (74.8 × 101.8 cm)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미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의 많은 작품들이 <철길 옆의 집> 보다는 위의 <철길 건널목> 같은 중성적인 감성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된 색상이나 그림의 구도들을 고려해 보면, 이 작품은 보편적인 한가로운 전원주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호퍼가 그런 특수한 감정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떠한 원인이 있을까요?


1920년대 미국 사회는 거품이 잔뜩 낀 흥청망청한 분위기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주식시장 및 이전의 시대와 달라진 경제 시스템의 발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부'를 향한 거대한 열망에 편승하고 있을 무렵, 사회의 한편에는 이런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 내는 자본의 편향적 속성으로 인해 소외받는 계층 역시 점차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현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양극화와 유사하게 계층 및 계급 간 단절을 불러오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속한 동시대의 사회가 가진 이면의 모습에 관심이 있고 예민한 그리고 그 기저를 꿰뚫어보는 인사이트가 있는 이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단절이 '대공황'이라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미국 사회에 많은 영향들을 미치게 되고,

그런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모습들이 에드워드 호퍼가 isolation이라는 감정을 그의 그림 속에 자주 담아 내게 되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심리적 공황과 단절감 등을 겪으며 비뚤어진 인간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데 바로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힌 극단적인 폭력성입니다.

이런 것들에 관한 탐구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로버트 블로흐의 소설 <사이코>이며, 영화 <사이코>는 소설이 출간된 그 이듬해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이 속해있던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 내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이미지들을 누구보다 정확히 감지하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그가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독과 단절의 느낌을 점점 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닐 테지요.


알프레드 히치콕은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이런 미국이 가지고 있던 단면 속에 담긴 속성을 이미지화하려고 했을 테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히치콕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영화 <사이코>에 등장하는 빅토리안 하우스는 사실 엄밀히 말하면 <철길 옆의 집>에 등장하는 집의 이미지를 그대로 본떠서 만들지는 않습니다. 단지 이 작품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를 차용했을 뿐이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에 존재하기에는 작품 속 집의 이미지에서 보이는 장식들은 너무도 화려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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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주간 경제지 <Economist>에 등장하는 호텔 광고를 보고 미친 짓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사카로 출장 갔을 때였는데, 업무에 편리한 도심 지역 호텔을 두고, 출근을 위해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오사카만에 접한 Hyatt Regancy를 선택한 것이죠.


멋지게 생긴 광고 속 모델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 방에서 샤워를 하고 난 모습인지 가운을 걸치고 룸서비스를 시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창가에 기대서 세상이 내 것이다 라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Hot place에 묵으리라는 엉뚱한(?) 일념으로 호텔을 선택하고, 저녁 늦게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룸서비스를 시켰습니다.


일단 룸서비스용 메뉴판을 보니, 저 같은 출장자에게 허용되는 allowance를 충족시키는 메뉴는 햄버거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햄버거 세트와 기네스를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샤워를 하고 모델처럼 가운을 걸치고 방으로 배달된 음식을 Glass로 된 화려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맥주를 마시며 햄버거를 입에 무는 순간,

그토록 화려하게 보이던 바로 그 장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독감과 함께 한심함이 가슴을 저미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함께 할 누군가도 없이 홀로 이렇게 앉아서 쇼를 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라는 의문이 머리를 통해 가슴으로 전달된 것이겠지요. 


혼자서 그 궁상맞은 장면을 연출하겠노라고 낑낑 데며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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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옆에 버려져 있는 빅토리안 하우스의 창문을 마치 신전의 창이라도 되는 것처럼, 멋진 장식이 들어간 모습으로 화려하게 그려낸 호퍼를 보면서, 보이는 것과 그 안에 담긴 것 사이의 극적인 대조를 통해 더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젊은 날의 호기가 만들어 낸 그날의 고독감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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