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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Oct 28. 2020

가장 확실한 불확실성

도스또예프스키에 관한 단상들

도스또예프스키의 <백치> 


밀란 쿤데라가 웃음의 실체에 관해 도스또예프스키가 내리고 있는 정의를 이 소설 한 장면을 인용해서 설명하는 것을 읽고 난 이후부터 내내 제 위시리스트에 올라있던 작품이었건만 게으름으로 이제야 책을 펴기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이 감수성 예민한 작가가 관찰해 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들이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는 제 머릿속 수면으로 물방울을 튀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많은 연상들이 떠오르며 생각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갔습니다. 


주인공 미쉬낀 공작은 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관해  '육체적 고통은 영적인 괴로움을 앗아가고 단지 상처를 통한 아픔만 느끼게 되며 그렇기에 가장 심한 고통은 육체적인 상처가 아닌, 영혼이 육체에서 날아가 버리고 자기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형제도에 대해 '이런 최고의 고통을 한 시간 후에, 그다음엔 10분 후에, 30초 후에, 그리고 지금 당장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최고로 가혹한 짓'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분명히 없을 것이라는 확실성

    



도스또예프스키가 정의한 죽음 앞에선 인간의 모습에서 몇몇 영화 또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벨기에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와 영국의 형사 드라마 시리즈 <루터>였습니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을 통해 실존하는 인간에게 과연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브뤼셀에 살고 있는 신에게는 집 나간 아들과 10살짜리 딸이 있는데,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딸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자신의 아버지 '신'에게 반기를 들고 인간 세상으로 가출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골탕 먹일 멋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게 되는데, 바로 신의 비빌 병기인 "인간의 수명"에 대한 비밀을 지상의 모든 이(휴대폰을 가지고 있는!)에게 문자로 전송해서 해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의 행위에 대노한 아버지(신)는 겁에 질려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복종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인데, 이렇게 자신의 수명을 알아버리면 누가 나에게 복종을 하겠어"


집 나간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머릿속에 딸에 대한 걱정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군요. 여전히 자신의 권위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수명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은 이 확실성을 통해 새로운 생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도스또예프스키가 언급한 것처럼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상황으로 더 큰 절망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병에 걸려있는 그래서 엄마 없이 혼자 살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아들의 수명이 자신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는 과연 잠든 아들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 죽여야 할까요?


반대로 스스로가 파 놓은 함정(성공, 돈 등에 대한 욕망)때문에 또는 운명이 자신에게 던진 함정(불치병 등)때문에 삶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남은 삶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고자 새로운 여정을 떠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여정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마치 예수의 제자(사도)들이 자신들의 여정을 엮어 신약성서가 만들어진 것처럼 하나의 새로운 신화 이야기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로 예상이 되실 텐데 영화의 결론은 짐작하듯이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그에 반에 영국의  형사 드라마 <루터>는 훨씬 냉정하게 상황을 묘사해 냅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 열혈 형사 루터는 의외로 사건 해결을 위해선 불법을 저지르는 일에 그리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라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는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오해를 사게 되는 데, 동료 이안도 그중 한 명입니다. 이안은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이 강한 형사입니다. 그렇기에 법이라는 규칙을 적절히 이용해나가며 자신이 처한 삶의 문제들(주로 경제적인)을 무난하게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안이 돈을 받고 뒤를 봐주던 조직이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루터가 뒤쫓게 되죠. 이안은 조그만 그래서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작은 돈을 받고 사소한 일들을 처리해주었던 것인데, 그의 예상을 뒤엎는 상황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드라마는 이안이 자신의 문제를 감추려 루터 협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인질로 잡고 있던 루터의 와이프를 살해하게 되는 엄청난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너를 끝까지 쫓아서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는 전화기 너머 루터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평생 자신을 갈가먹을것을 예감한 이안은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루터 앞에 맞서지만 기습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총을 놓쳐버리고 자신을 겨누고 있는 루터의 총구 앞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통상적인 대사를 던집니다.




"어서 당겨, 나를 쏴서 죽이란 말이야. 니 와이프가 죽기 바로 전에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



악인과 정의의 사도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상황 아닌가요? 결국 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 있겠는가, 법이란 제도하에서 악인이 저지른 악행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하자라는 윤리책에 나오는 정답 같은 상황..


이안은 루터가 결코 자신을 쏘지 못하리라는 확실성을 기반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에 확실성이 있기에 자신을 쏴서 죽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대고 있는데, 맞습니다. 루터는 쏘지 못하고 이안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안이 숨겨놓은 칼에 찔려 상황은 반전이 돼버렸습니다.



여기에 제3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천재 소시오패스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앨리스입니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모든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한 완전범죄를  저지르던 그녀의 비밀을 루터가 알아차립니다. 물론 그녀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죠. 어떻게 증거를 인멸했는지는 알지만 법의 시스템 하에서는 그녀가 사라지게 한 증거 없이는 그녀에게 살인죄를 선고할 수 없을 테니까요. 


어쨌건 이런 한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루터와 독특한 관계를 만들게 되는 앨리스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루터 주위를 맴돌며 그에게 위협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루터에게 위험을 암시해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보여주는데, 이 앨리스 역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확실성입니다.


그야 말로 한다면 하는 여자인데, 문제는 그녀가 행하는 행위의 근거가 선이나 도덕 또는 정의 이런 것과는 상관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선과 악, 도덕 그리고 정의 이런 것들은 인간의 감정에 근거한다는 철학자들의 분석이 많죠. 반대로 감정이 배제된 이성은 상황에 맞는 최적의 해답을 찾을 뿐입니다)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보편적 사고에 대한 이 드라마의 해석은 그렇기에 이런 선과 악에 구애받지 않는 소시오패스의 입을 통해 등장합니다.


형사인 두 남자를 향해 "너희들은 강간, 폭력, 납치 등을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크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죽음이야. 그렇지 않아?  죽는다는 것이 말이야!"


이렇듯 상황이 만들어 내는 감정에 전혀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소시오패스 캐릭터가 내 뱉는 대사 이후에 이안은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가져다준 확실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새로운 확실성에 사로 잡히게 되며, 예상대로 드라마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은 많은 경우에 무지에서 시작됩니다. 두려움의 대상에 대한 확실성이 없다 보니, 상상력이 개입을 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내는 허상들이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같이 가장 두려운 존재도 죽음의 실존 자체가 아닌 그 현상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 또는 절망에 대한 각각의 확실성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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