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에서
영화 <데몰리션>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답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서게 된 주인공
운명은 자신에게는 하나의 상처도 남기지 않은 채 아내를 한 순간에 빼앗아 갑니다.
병원 응급실 앞에 앉아 있던 무감정의 이 남자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허기를 느끼고 자판기 앞을 향하는데,
뭔가에 걸려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M&Ms 의 모습은
그 순간 남자의 감정도 어딘가에 걸려 막혀 있음을 암시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내의 마지막 말이 문득 떠오르는 데,
"냉장고를 고쳐줘, 당신에게는 공구가 있잖아"
그런가요? 이 남자에게 자신의 고장 난 감정을 고칠 수 있는 공구가 있었을까요?
그리고는 상투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 장인어른이 말하셨지
: 무언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내야 해"
그렇게 물이 새던 냉장고는 완전 분해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해체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주인공이 자판기 회사에 보내는 불만을 담은 편지 속에 첨부된 듯한 모양으로 포장돼서 관객들에게 보이게 하는데요, 편지의 최초 목적은 사실 그저 세상을 향한 무의미한 단발성 외침이었지만, 자판기 회사에 근무하는 누군가(나오미왓츠)에 의해 읽히면서 그 생명력이 지속되게 됩니다.
그렇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새로운 관계 속의 등장인물들은 편지를 통해 알게 된 내용 이상은 주인공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통해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이 장면들은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이 선글라스를 쓰고 헤드폰을 머리에 낀 채 뉴욕의 거리를 걸어가며 춤을 추는 연기로 표현되곤 하는데, 질렌할의 춤은 항상 약간은 몸치이지만 솔직한 감정이 담긴 귀여운 모습입니다. (질렌할이 신인시절 출연했던 Jaarhead에서 스트링 속옷만을 입고 춤을 추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점차 그는 편지를 쓰는 동안 메타포란 단어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부셔버리고 난 주인공은 드디어 자신의 아내가 남긴 사랑과 배신을 알게 되고, 아내가 붙여 놓은 곳곳의 포스트잇에 담겨있던 그를 향한 사랑의 메타포를 발견하게 되죠.
그렇게 진정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남자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나오지 않던 그 눈물을 말이죠.
영화 <데몰리션>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