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데이터 드리븐 UX
요즘 자기네 회사는 데이터 드리븐 UX(Data Driven UX)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막상 깊이 들어보면 A/B 테스트나 지표를 보고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확신이 생긴다고는 하는데 …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작 그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쓰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여기 아주 소소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드릴게요.
십여 년 전에 한 번은 회사에서 중고거래 커머스 페이지의 상세 화면을 개편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개편의 목적은 상품 정보가 사용자에게 잘 전달되도록 할 것, 지금에서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목적이지만 십여 년 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초기 스큐어모피즘이 대세를 휩쓸며 너도나도 UI에 덕지덕지 치장질을 하는 게 유행 같은 시대였죠. 그러니 당연히 화면의 주연인 상품정보 컨텐츠는 시선이 덜 가고 오히려 조연이어야 할 UI 장치들이 시선을 앗아가고 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요소들을 정리하고 재편성하면서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이거였어요.
소셜 공유하기 버튼, 지금이야 너무 당연한 기능이지만 페이스북을 필두로 소셜 서비스가 이제 막 우리나라에 퍼지기 시작한 때라 대부분의 서비스는 OG(Open Graph)가 뭔지도 몰랐던 곳이 태반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셜 공유가 붙어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키치함을 대변하는 지표로 활용됐고 너도나도 저렇게 공유 버튼을 자랑스럽게 늘어놨더랬죠.
그런데 이 상품정보 화면을 개편할 즈음에 구글이나 애플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공유와 같은 확실한 목적성을 가진 요소는 무작정 늘어놓아 사용자에게 노이즈를 만들지 말고 공유 버튼이라는 곳에 숨겨두자는 권고사항을 내놓았더랬어요.
어찌 보면 당연하죠, 공유 버튼 하나만 학습되면 목적이 있는 사람만 버튼을 눌러 액션을 취하면 되고 목적이 없는 사람은 최소한의 시선 자극으로 컨텐츠를 더 소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거기에 공유 버튼의 아이콘 메타포는 이미 수년간 사용자들에게 학습되어 대부분은 공유 버튼을 찾는 게 어렵지도 않았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개편을 완료하고 서비스 지표를 살펴보다 며칠 뒤 대표님이 절 찾더군요.
소셜 공유 클릭 지표가 60%나 빠졌어
바이럴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고민하고 개편을 했어야지!
저는 당황스러웠어요
먼저 인터페이스 개편 후 수치가 어느 정도는 요동치다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며칠 만에 불만을 쏟아낸 점, 이건 집에 티비 리모컨을 새 걸로 바꿨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동안 손에 익어 눈감고도 조작하던 리모컨이 배열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어색해서 자꾸 눈으로 확인하고 버튼을 누르게 되잖아요?
그 학습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게 당황스러웠죠
그리고 또 다른 당황스러움은 이 60% 하락이라는 지표를 해석해 보지도 않고 힐난하려 들었다는 점이죠.
뭐 어찌 보면 대표는 바쁜 사람이니 해석은 실무자의 몫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타박을 하기 전에 물어봤다면 좋았을 텐데 …
자, 여기서 성질이 더러운 저도 오기가 발동합니다.
그대로 롤백을 해도 상관없지만 똑똑하신 구글/애플의 석박사님들이 연구해 놓은 결과가 왜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전 같은 논리에서 간편식품도 대기업 걸 즐겨 먹습니다. 똑똑하신 분들이 만든 제품이니 다 맛있을 테니까요. (농담입니다)
아무튼 저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제가 의문을 품었던 건 그 시기만 해도 중고 상품을 산다는 건 그다지 지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인데 대체 왜 공유를 누를까?
조용히 경제적인 소비는 할지언정 주변 지인들에게 퍼 나를 이유가 다소 빈약해 보였거든요. 지금처럼 당근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는 시대도 아니란 점을 감안해 주세요.
그래서 전 다시 부분 개편을 하면서 소셜 공유 버튼들 앞에 ‘공유하기’라는 이름표를 달아줬습니다.
기존의 클릭 지표가 사용자 의도와 어긋나는 노이즈가 끼인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증명하고 싶었죠
부분 개편 후에 지표를 보니, 최초 개편 전보다 53% 하락으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7% 정도 회복되었던 거죠. 그럼 대체 이 53%의 수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버튼은 이전과 같이 돌아왔는데 왜 지표는 돌아오지 않았던 걸까요?
저는 이후에 이 의문의 해답을 찾아 일종의 VOC 수집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발견된 사용자들의 목소리는
전 그거 판매자한테
연락하는 버튼인 줄 알았어요
그렇습니다,
기존에 공유 버튼을 누르던 고객들의 53%는 이게 그냥 구매하기 위해 연락하는 버튼인 줄 알았던 거예요. 그리고 바로 회복되었던 7%는 리모컨을 예전 걸 돌려줬더니 익숙하게 다시 사용한 사람들이고요.
비즈니스에서 여러 지표들은 소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같은 53%는 계속 클릭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았을까요? 전 확실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사용자는 무언가 액션을 하기 전에 기대를 품게 됩니다.
판매자에게 연락하기 위해 소셜 컨택 버튼을 눌러 판매자와 대화가 시작되리라 기대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 기대가 어긋나 엉뚱한 결과를 사용자에게 보여준다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주 작은 예시를 들었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요소들이 뭉치고 뭉쳐 서비스 여기저기에 쌓여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용자는 여러분의 서비스를 쓰는 중간중간에 자잘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불쾌함을 경험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사실 중에 하나인, 우리는 시장에서 대체재가 존재하는 one of them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친구와 불편함이 쌓여간다면 다른 더 친절한 친구와 만나면 됩니다, 굳이 내 감정을 소모하며 스트레스받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렇기에 전 주니어를 비롯해 많은 후배들에게 꼭 이 말을 해줍니다
숫자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지 마
왜 그렇게 나타나는지
뒤에 있는 사람이 어찌 느끼는지 해석해야 해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읽기만 하지 마세요. 수치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타당한 논리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전까지는 함부로 데이터를 기반한 설계/디자인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이런 고민 없이 겉멋 든 데이터 드리븐 UX라는 말을 입에 담는 건 너무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입니다.
모두 기억하세요
거기 숫자 뒤에 사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