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바보도 생각하게 만든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 본인이 UX 디자이너/설계자로 성장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슬슬 밑으로 눈망울이 해맑은 신입들이 들어오거나 아니면 조금 더 황달끼가 있는 부하직원들이 들어와 있는 조금 더 나이 먹은 관리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 역시 스스로의 성장도 벅차지만 밑에 사람들을 잘 성장시켜줘야 하는 역할 또한 언제나 큰 고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인재를 키워내는 방법 중에 왕도로 꼽히는 방법은 역시 칭찬이겠죠.
어떻게 보면 책을 안 봐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는 이 책이 12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생각보다 제대로 칭찬을 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다는 게 또 놀랄 일이더군요.
칭찬을 받으면 뇌 내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고래도 춤을 추죠.
그런데 이건 한 가지 함정이 있는데, 사람은 행동을 하면서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는 보상을 기대하고, 이에 대응하여 칭찬이 보상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칭찬받을걸 예상하고 무언가를 했고, 대응하는 칭찬을 받았다면? 기분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칭찬을 받지 못하면? 오히려 도파민이 낮아지고 스트레스가 찾아옵니다.
조직 내의 칭찬 방법, 일종의 칭찬 로직에 적응하게 되면 점점 조직원은 칭찬받기 쉬운 형태의 일만 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이럴 경우 조직의 창의성은 줄어들고 칭찬을 받기 쉬운, 다시 말해 성과 도출이 쉬운 방법과 업무로만 편중되게 됩니다. 마치 종소리만 들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요.
조건 반사적인 칭찬은 되려 독이 될 테니 칭찬을 제대로 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칭찬은 해주어야 하지만, 조직의 창의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뭘까요?
사실 저도 정답은 모릅니다. 정답을 알았다면 저는 지금보다 더 잘 살았겠죠. 빚도 없이, 노후 걱정도 없이.
하지만 나름의 노하우라고 부끄럽게 소개할만한 원칙이 있다면 항상 생각하는 과정을 듣고 그 과정을 칭찬한다는 겁니다.
결과를 칭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회사에선 KPI라는 기준이 있기에 이를 달성했느냐 못했느냐를 가지고 단순하게 평가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여기서의 맹점은 결과는 가로채기가 쉽다는 점.
하지만 결과에 더불어 과정을 칭찬하고 논의의 자리에서부터 이 과정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노력하는 자 이외에 어뷰징 요소가 확연하게 줄어듭니다.
그리고 과정을 포함하여 칭찬하게 되면 인간은 도파민의 노예, 점점 칭찬을 찾아 합리적인 과정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국 우리가 UX를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논리의 근거와 생각의 흐름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니 칭찬해야 하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는 이렇게 해봅시다.
이야, 이거 진짜 좋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사실 결과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관리자는 과정을 살펴봤을 거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런 칭찬은 또 이상할 수도 있어요? '아니 지가 보고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한지를 물어봐?' 하지만 전 일부러 다들 보는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꼭 해줍니다. 과정/근거에 대해서도 평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이 칭찬은 상하 관계에서만 이뤄지란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단순한 기획서나 디자인 리뷰를 하는 잘에서도 얼마든지 생각하게 하는 칭찬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저는 회의를 할 때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단순한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반드시 근거를 설명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 부서원들에게도 꼭 이 원칙은 지키도록 부탁하곤 하죠.
이유는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근거와 논리를 확인하고 어떤 고민으로 결과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결과와 과정 모두 좋다면 위와 같이 칭찬하지만 결과가 부족해도 과정이 훌륭했다면 다음과 같이 칭찬을 해봅니다.
아이디어는 조금 아쉽긴 한데
접근 자체는 정말 좋은 거 같아,
이건 나도 몰랐던 방향인 거 같은데
이렇게 수정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는 뒤이어 제안하는 수정안은 왜 그래야 하는지 다시 근거를 들어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업무 자체는 탑다운일 수는 있어요. 모든 조직이 수평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과정을 칭찬하고 추가 제안을 했더라도 근거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가 상실된 결과만을 받아 들어야 하니 여기까지 챙겨주어야 생각하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뭔 육아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환경을 생각하면 칭찬을 제대로 못하고, 못 받아본 삶이 대부분일 겁니다. 저 역시 서울대에 간 누나 밑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다 혼나기만 했지 조금 모자란 결과를 받아 든 제가 노력한 과정을 칭찬받아본 일은 거의 없었거든요.
이건 부모님 세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분들의 삶은 빠르게 뭔가를 이뤄내야만 했던 힘든 시절을 살아오셨고, 그리고 결과만이 모든 걸 결정했던 시대이니까요. 최소한의 결과만이라도 얻지 못한다면 굶어야 했던 혹독한 삶, 과정을 살필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네 삶은 이전의 부모님과 달리 풍족한 시대를 보내고 있잖아요?
그러니 제대로 된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제대로 칭찬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변명 외에, 적어도 다음 세대들, 우리가 가르치고 키워야 하는 세대들에게는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줘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