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만 오늘은 출근을 합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들려오는 빗소리에 조용히 발을 부비적거려본다. 몇 분 뒤 이 신선함을 깨는 휴대폰 알람소리. 오늘 내 하루 일당은 '빗소리 들으며 하루 종일 책 읽기'를 빼앗긴 값어치인 듯하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양치와 세수를 하곤, 건조함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듯 대충 화장품을 찍어 발랐다. 그리곤 스마트 워치에 찍힌 현재 온도를 확인하고 비가 튀어도 문제가 안 될 만한 옷으로 걸쳐 입었다.
아파트 1층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하늘을 확인한다. 생각보다 적게 내리는 비에 조금의 만족감을 느꼈지만 이내 타이밍이 맞지 않는 횡단보도 신호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젖은 우산이 다른 사람의 옷을 적시지 않게 돌돌 말아 접은 후, 지하철에 올라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캔하고 자리를 잡는다. 누군가 젖은 우산으로 내 바지를 적시진 않는지 예민한 신경을 곤두 세우다 금방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글자에 사로잡혔다. 출근하는 지하철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한 번의 순간이 있는데, 한강 다리 위를 지나는 그 순간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이 때 비까지 내려준다? 이 보다 좋을 수 없다. 지하철 안에서 느껴지는 묘하게 기분 나쁜 냄새와 습도가 그 순간 만큼은 잊혀진다.
예민덩어리인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물론 밖을 돌아다니는 건 싫어한다. 출근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이란 부가적인 조건이 상당히 따라다닌다. 일단,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는. TV나 평소 즐겨 듣던 음악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맨발을 부비적거렸을 때 슥슥- 하고 소리가 나는 적당한 뽀송함이어야 한다. 가벼우면서도 포근한 이불속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발만 부비적거리고 있다 잠이 몰려오면 그대로 까무룩 잠드는 게 참으로 행복하다.
오늘도 내 하루치 행복을 일당이라는 놈에게 빼앗겨 분하기도 하지만, 행복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때도 있는 거니까!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날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