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신비한 체험

< 도쿄 기담집 >

by 밀밭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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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奇談)집에는

5편의 이상야릇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우연 여행자'이다.

* 우연 여행자 *

무라카미 자신이 경험한 신기한 일 중

별 볼일 없는 소소한 체험을

짤막하게 얘기하겠다고 미리 서론에서 밝힌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신기한 일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게 되면

지면의 대부분을 다 써버릴 것 같으니 양해하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런 능청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이지~ㅎㅎ)

<첫번 째 경험담>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재즈클럽 '레거타 바'에서

라이브 연주를 듣는데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토미 플래너건이 이끄는 트리오였다.

그는 평소 얄미울 만큼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는데

그날은 왠지 뭔가 부족해 보였다.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 연주에 몹시 아쉬워하며

이대로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속에

만약 자신이 토미 플래너건에게 두 곡을 신청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바르바도스'와 '스타 크로스트 러버스'를 선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플래너건은 그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하며 스테이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사실 그 두 곡은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곡인데

저 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재즈곡 중에서

무라카미가 단지 마음속으로 생각해 낸 두 곡을

실제로 듣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무라카미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나는 와인 잔을 손에 든 채 모든 할 말을 잃었다"라고 표현했다.

<두번째 경험담>

보스톤 버클리 음대 근처 중고 레코드점에서

아주 오래된 페퍼 아담스의 <10 to 4 at the 5 Spot>을

좋은 가격에 오리지널 판으로 살 수 있어 '작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행복한 마음으로 사들고나오는데 한 젊은 남자가 우연히 말을 걸며

"근데 지금 몇 시야?" 묻길래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10 to 4"여서 헉~하고 놀랐다.


내용면에서는 별것도 아니고, 그런 일로

자신의 인생의 흐름에 어떤 변화가 생겼던 것도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신비함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얘기다.


뒤를 이어 어느 지인이 들려준 피아노 조율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면서 가족과 연락이 끊겼던 그는

우연히 만난 한 여자의 귓불에 있는 점을 발견한 뒤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자신의 누나를 떠올리고

다시 연락해 화해하는 내용이다.

그 누나는 암 투병 중이어서 더 극적인 화해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 여자의 귓불에 있는 점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기 위한 운명의 작은 소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처럼 우연의 일치가 몇 차례 거듭되면

그 끝에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이끌려가는 것이 바로 운명이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우리의 운명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된다.





도 서 : 도쿄기담집

저 자 : 무라카미 하루키

출 판 : 비채

발 행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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