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미오기傳 >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이 있어 집어 들었다.
보통은 미리 예약해 놓은 책만 찾아서 가져오는데 어제는 무심코 종합자료실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미오기傳]
<프롤로그>를 펼치니 이 책이 나오게 된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쓰고 맵고 아린 시간에 열을 가하자 순한 맛이 되었다.
나는 술래잡기하듯 아픈 기억을 찾아내 친구로 만들었다.
내 과거를 푹 고아 우려낸 글, '곰국'은 이렇게 나왔다.
: 나는 가급적 지나간 일은 잊으려하고 현재에만 집중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비겁하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의 과거를 곰국 끓이듯 푹 고아 우려낸 글을 쓴 작가는 대단히 용감무쌍하다.
< 작가 소개 >
작가 김미옥은 자타공인 활자중독자로, 2019년부터 페북에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간 800여권의 책 읽기, 1일 1권 이상 읽기와 쓰기를 계속하다 보니 불세출의 서평가로 알려졌고 의도치 않은 팬덤도 생겨났다.
<시로 여는 세상>, <문학 뉴스>, <중앙일보> 등의 매체에 칼럼을 쓴다.
저서로 [미오기傳] 외에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가 있다.
: 내가 그동안 소설 위주로 읽기를 즐겼고 페북을 하지 않았던 걸 후회할 만큼 뒤늦게 알게 된 작가다.
진즉 알았더라면 나 역시 팬덤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책들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 미오기傳을 읽다가 밑줄 그은 공감대 >
* 며느리가 나를 종이 다른 인간으로 보는 것 같다.
내가 키운 적도 없고 등록금 한 번 준 적도 없으니 이 정도 사이면 적당할 것 같다.
1년에 한 두어 번 보면 괜찮은 친인척이 아닌가.
p72
: 최근에 나 역시 며느리를 보았던지라 이 문장을 읽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족과 위안의 의미를 담아...ㅎㅎ~
* * 지울 수 있는 과거는 없다. 다만 잊으려 노력할 뿐이다.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굳은 살로 돋아나 생살보다 튼튼해진다.
같이 안고 가야 하는 것들이다.
p174
: 아픈 기억을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일과 같다.
작가의 말처럼 지울 수 있는 과거는 분명 없다.
생살보다 튼튼해지는 굳은 살로 안고 가야 함에 동의한다.
*** 나는 물거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진짜'가 되고 싶었다.
살면서 희미하게 내 삶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을 모방했고 그들이 웃으면 같이 웃었다.
비슷한 학벌을 가지려 애썼고 비슷한 물질을 가지려 노력했다.
'유연하게 대처한다'라고 나의 위선을 합리화했다.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수많은 가짜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속삭였다.
진짜를 두리번거린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물거품이 되기 전에.
p194
: 작가가 20대 시절 알게 된 명화 모작실의 미대생이 "우리 사귈까?" 했을 때,
그의 그림처럼 사랑도 가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참 일찍 철이 들었다.
****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온 딸을 불행의 상징으로 여겼다.
나는 인간이 불행할 때 반드시 희망이 나타나는데 그게 나였을 거라고 했다.
잘난 척하는 딸에게 평소 같으면 소리를 질렀을 엄마가 웬일로 고개를 그덕거렸다.
"딸을 하나 더 낳을꺼로..."
엄마로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p199
: 불행할 때 찾아 온 희망이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높은 자존감과 자부심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런 마인드였기에 그녀는 성공했다.
***** 단순 노동의 묘미는 무념 무상이다.
p219
: 이 단 한 문장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맞아~맞아~ 화가 날 때 난 집안을 다 뒤집어 대청소를 하고 이불 빨래를 한다.
그러면 불쏘시개 같던 내 속이 가라 앉아 숯불처럼 은근해진다.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안으로 품고 있는 숯불이라는게 문제지만 머리를 비우는데는 단순 노동이 제격이다.
******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현인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깨닫는 건 개인의 몫일 뿐이다.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조언은 될 수 있어도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없다.
하루를 마치고 밤에 오늘을 돌아보는 것.
그래.
밤이 스승이다.
p226
: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깨달음은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한다는 사실!
******* “ 세상에 표준은 없어. 내게 맞는 게 표준이야.“
p228
: 이 표현은 딱! 작가 김미옥 스타일이다.
세상의 중심추를 자기 자신으로 시작하는 그녀,
너무 멋지다.
< 다 읽고 느낀 점 >
작가의 표현대로 미오기傳은 명랑 컨셉이다.
문장력으로는 작가 박완서님을 떠올릴 만큼
술~술~ 편하게 읽히면서도 진지함과 위트가 잘 버물려 있다.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작가 자신의 삶과 얽힌 이야기들을 전개하는데
때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때론 포복절도 시킨다.
걸죽한 입담으로 무지막지하게 질러대는 욕설까지 통쾌하다.ㅋㅋ~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과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음을 알게 하고
폭넓은 지식과 광기어린 혜안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만든다.
한마디로 무조건 재미있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야겠다.
제 목 : 미오기傳
저 자 : 김미옥
출 판 : 이유출판
발 행 : 2024.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