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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Jul 19. 2017

[프랑켄슈타인 - 메리셀리]

신에게 도전한 대가

이름도 없이...

흔히 머리 부분에 볼트가 박힌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다. 사실 그건 그 괴물을 탄생시킨 사람의 이름이다. 정작 그보다 유명한 괴물은 안타깝게도 이름도 없이, 'Devil', 'Daemon' 따위로 불리며 작품 내내 문전박대와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당한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외모 때문에 늘 멸시받고 공격받고 외로워야 했던 괴물.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버려진 이 괴물과 그를 둘러싼 프랑켄슈타인과 주변인들의 행동은 단순한 공포소설로 끝나지 않게 했다.


왜 끔찍하게 만들어가지고...

 entered with the greatest diligence into the search of the philosopher's stone and the ELIXIR OF LIFE. But the latter obtained my undivided attention : (...) if I could banish disease from the human frame, and render man invulnerable to any but a violent death!

나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철학자의 돌과 생명의 묘약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두 번째 것이 특히 내 주의를 집중시켰다. (...) 만약 내가 사람의 몸에서 병을 없앨 수 있다면, 인간을 갑작스러운 죽음을 제외하고 어떤 것에도 끄떡없이 만들 수 있다면!

어릴 적부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비로운 매력을 풍기는 일종의 '사이비'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가서도 그 흥미는 지속되고, Elixir of Life(생명의 묘약, 만병통치약)를 얻고자 생명의 근원을 알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작업의 핵심인 생명의 비밀을 알게 되고, 급기야 공동묘지에서 시체들을 가져와 이리저리 조립하면서  드디어 더미에 생명을 불어넣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작업의 결과물은 너무 흉측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 긴 시간 동안 노력이 깃든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도 못하고 도망친다. 여기서부터 '프랑켄슈타인'의 것이면서 그 괴물의 것이기도 한 비극이 시작된다. 자신이 자초한 예상치 못한 결과와 연속된 불행을 겪는 존재와 본의 아니게 그 원흉이 되고 버림받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


그는 왜 그런 괴물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완벽한(적어도 우리보다는) 신도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인간, 프랑켄슈타인은 훨씬 더 불완전하고 끔찍한 괴물을 만들고 말았다. 결과는 뻔했다. 그 흉측함은 그가 '생명의 비밀을 알겠다'라는 목적에 눈이 멀었으며 생명과 그 이성을 가진 존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오만했으며, 그만큼 부족하고 어설픈 상태에서 그 일을 저지른 결과임을 보여준다.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방향을 바꾸려 한 건방짐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는 자신의 그 행위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없었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불행으로 이어졌다.


괴물의 사연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갖고 있다. 제일 큰 틀은 월튼이 여동생에게 쓰는 편지다. 그 안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월튼에게 말하는 시점. 그리고 그 안에 '몬스터'가 프랑켄슈타인에게 말하는 시점. 이렇게 세 가지의 시점이 있다.


월튼와 프랑켄슈타인의 시점과는 달리, 몬스터의 내레이션이 꽤나 많은 챕터를 차지해서 놀랬다. 예상치 못한 전개랄까. 프랑켄슈타인이 그 긴 이야기를 들어준 게 대단할 정도다. 한편으론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한데, 이 부분으로 단순히 괴물이 나오는 기괴한 공포소설에서 한 단계 넘어선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There was none among the myriads of men that existed who would pity or assist me; and should I feel kindness towards my enemies?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동정하고 도와줄 사람들이 없지. 굳이 내가 나의 적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까?

- 괴물의 대사 -

괴물의 변명에 의하면 그는 처음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른 존재의 호의와 사랑을 원하고 자신도 그것을 베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반복된 기대와 희망의 좌절, 믿었던 Felix 가족의 배신과 그만큼 컸던 절망이 그를 계속해서 어둠으로 몰고 갔다. 외모만으로 그를 판단한 인간들이 갓난아기 못지않게 착하고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복수와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악은 처음부터 존재한 게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완성되었다.


이렇게 그의 사연은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혹은 '인간이야말로 악을 생산해내는 게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게 했다.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바꿀 수도 없는 조건으로 인해 악마와 같은 취급을 반복적으로 받는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은 ''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섣부른 판단과 '사회적 낙인'으로 또 다른 악을 만들어내고, 또 굳이 악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프레임을 덮어 씌우면서 그런 존재가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21세기 The Modern Prometheus

이 책을 구입한 시기가 한창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로 인공지능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하던 때였다.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비슷한 주제를 다룬 이 소설도 화두에 올랐다.


프랑켄슈타인이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과 지금 우리가 열심히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상황에 닮은 점이 많다. 그는 그가 만든 작업물이 어떤 이성을 갖고 어떻게 나아갈지 예상치 못했다. 그가 드디어 신의 성역인 '생명을 창조해냈다'라는 것에 눈이 멀었지 그 존재가 생각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간과했다. 덕분에 괴물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이처럼 우리가 개발하는 인공지능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을까. 솔직히 우리도 우리 자신과 우리가 생각하는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기계를 만든다? 우리도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특징이나, 우리도 예측 못한 논리로 우리를 당황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인공지능도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 기술 발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나는 인터넷 서핑과 쇼핑을 편리하게 하고 있고 덕분에 게임도 더 재밌게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이때까지 있었던 기술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인간에 의해서 쓰이고 작동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과 그 결론으로 그의 행동 패턴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만약 기계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 변화를 숨긴다면?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머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에 따라 어디까지 개발할 것인지 한계를 정해야 한다. 정해진 목적 외에 행동이 불가능해야 하고 우리의 통제가 가능해야 이기(利器)다. 


기술의 발전에 이런 보수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뒤의 소감과 모순된다.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을 장려하고 알고자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수학문의 중요성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예견된다면 굳이 그걸 밀고 나가는 것 역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프랑켄슈타인의 끝을 모르는 호기심과 열정이 괴물을 만든 것을 보고, 지금 우리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괴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색안경을 쓰고 그 상대방을 규정짓고 변화의 가능성도 짓밟지 않는지 생각했다.


이 외에, 주인공이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 진행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떠올랐다. 정말 어렸을 때 청소년 버젼으로 읽었는데, 지금 읽으면 또 어떤 생각과 영감을 가져다 줄지 기대된다. 더 많은 고전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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