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획을 알아서 뭐하게?
퇴사 면담을 진행하면 부서 내의 파트장-랩장-그룹장 순으로 면담을 하고 제 직군을 관리하는 사람과 면담을 하고 그다음에서야 인사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사과를 만나면 '퇴직원'이라는 것을 받고 다시 처음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총 10번의 면담을 해야 그만둘 수 있습니다.
사실 보통의 부장님들이 되면 그만두는 직원이 달가워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 찝찝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사람들과 10번의 면담을 하기란 참 고역입니다. 그래서 많이들 면담을 짧게 할만한 핑계를 생각해뒀다가 면담 때 쓰곤 합니다. 괜한 어설픈 솔직함으로 '대화'를 시도했다가는 답을 강요하는 끝없는 대화의 굴레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한 번 인사과를 갔다 오면 '퇴직원'이라는 이상한 종이 한 장을 받아옵니다. 이제 이 것을 적어야 되는데, 내가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서명받을 사람도 한가득에 제 향후 계획까지 적어내야 합니다. 왜 이 종이에 제 앞일을 적어야 하는지 참 난감합니다. 이 곳의 문화나 사람이 싫어서 나가는 사람은 솔직하게 쓸 수 없으니 소설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종이가 제일 웃겼습니다. 퇴직하는 과정 자체를 비롯하여 이런 프로세스들이 마음이 여린 사람들, 살아보려고 나가는 사람에겐 더 힘들고, 하루하루가 큰 스트레스인 상황에 놓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 처음엔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회사를 개선하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 프로세스는 그만두는 사람을 하루 만에 온 부서에 알리는 역할과 그 사람이 나갈 때까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살게 하고, 부장을 비롯한 '높은 분'들에게 끊임없는 면담 시간을 가져다줍니다.
심지어 그 종이를 이용해 퇴사 후 계획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며 떠나야 하는 것이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퇴사하고 나면 그 계획을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꼭 그것을 퍼트리면서 비판을 했습니다.
"걔는 공부한다고 나갔어. 세상 얼마나 빡빡한지 모르고.... 나가면 더 지옥인데 얼마나 애 같아?"
라는 식으로 평가하고 단정 짓습니다. 저는 나가면서까지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마음이 답답하고 그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조용히 제 갈 길 가는 것도 참 힘든 곳이 회사이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