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절불굴 부전상립
대한민국 육군 제8기동사단, 흔히 오뚜기 부대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경기도 포천시, 양주시, 동두천시, 연천군을 주둔지로 하는 이 사단은 대한민국 군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8기동사단은 초기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군사작전에 참여하며, 한국전쟁과 이후 여러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낸 부대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8기동사단의 창설과 역사, 주요 전투와 업적, 그리고 현대의 훈련과 부대 구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제8기동사단은 1949년 6월 20일 창설된 한국군의 초기 사단 중 하나로, 그 기원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에는 제10연대를 기간연대로 하여 사단급 부대로 증편되었으며, 7월 5일에는 제21연대를 추가로 편입하면서 본격적인 사단의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막대한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었으며, 북한과의 긴장 상황이 날로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8사단은 주로 38선 경계 임무를 맡았으며, 태백산맥과 경상도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에도 투입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8기동사단은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게 됩니다. 특히 전쟁 초기 강릉 전투에서의 지연전은 제8기동사단의 전투 능력을 극명히 보여준 사례 중 하나입니다.
당시 제8사단은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강릉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큰 피해 없이 대관령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8사단은 탄광지대에서 트럭을 징발하여 기동력을 확보함으로써 빠른 전개와 철수가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기동력은 이후 전쟁에서 사단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전쟁 초기 대부분의 국군이 민간인 소개작전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제8기동사단은 이 작전에 성공하여 다수의 민간인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 사단이 공비토벌을 위해 분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개시 직후 빠르게 부대를 통합하여 북한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제8사단은 후퇴 과정에서 차량화를 통해 대부분의 중화기를 이동시킬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개전 당시 보유하던 중화기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국군 사단 중에서 매우 드문 성과로, 제8사단과 제6사단만이 전쟁 초기에 중화기를 온전히 보유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1950년 7월부터 9월 초까지 제8기동사단은 낙동강 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제8사단은 동해안과 영천으로 파고드는 북한군을 영천 신녕 전투에서 여러 사단의 증원을 받아가며 격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제8사단은 약 60일 동안 동해안을 홀로 방어하며 적군 27,500여 명을 사살하고, 7,943명을 생포하는 등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낙동강 전선이 형성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제8기동사단은 북한군의 침공을 지속적으로 저지하며 전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면서 중공군이 개입하자, 제8기동사단은 지리산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이후 동부 전선의 금화지구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제8사단은 동부 전선에서 지속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며 전쟁의 막바지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제8기동사단은 제5군단 예하 부대로 편입되어 경기도 후방 지역에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8사단이 공세적인 작전을 주로 수행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후방 지역에서의 주둔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제8사단은 2010년에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전환되었으며, 2015년에는 신설된 한미연합사단의 일부로 편입되었습니다.
또한 2016년 12월 1일에는 제5군단에서 제7군단 휘하로 배속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8기동사단은 다양한 대규모 훈련에 참가하며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13회에 걸친 팀 스피리트 훈련과 4회의 호국훈련, 5회의 군단급 FTX 등 대규모 훈련에서 주력 부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제8사단은 육군의 부대훈련 시범부대 중 하나로, 새로운 훈련이나 운용 체계가 도입될 때마다 이를 시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제8사단은 주둔지의 위치로 인해 훈련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며, 전방 사단이 아니기 때문에 예비사단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보사단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행군이 많은 부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육군 내에서 무조건 피해야 할 부대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제8사단은 공지합동훈련을 치르는 제5군단이 보유한 승진훈련장을 관리하는 부대이기도 합니다.
본부근무대
공병대대
정보대대
군수지원대대
기갑수색대대
정보통신대대
화생방대대
방공대대
의무근무대
군사경찰대대
보충중대
여단본부대
제101기계화보병대대 - 진호대대
제122기계화보병대대 - 두코대대
제137기계화보병대대 - 차돌대대
군수지원대대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제1보병연대 예하 수색부대로 시작해서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27대를 계기로 연대급으로 증편되었고.
수도사단에 예속된 독립기갑연대가 시초이며, 수도사단이 기계화보병부대로 재편될 때 기갑 명칭을 고수하면서 현재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과 일동면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단 예하 여단 중에서 상당히 전방에 동떨어져 있는 부대입니다.
여단본부대
제26전차대대 - 악어대대
제32전차대대 - 강병대대
제107기계화보병대대 - 코뿔소대대
군수지원대대
지금은 해체 및 각 부대가 분할되어 8사단, 11사단에 통폐합된 20사단 예하이던 당시 60여단은 (구)20사단에서 유일하게 한강이북에 주둔하던 부대였습니다.
독립여단 수준의 파견부대로서 작계상 7군단 20사단 소속이며, 지역적으로 6군단 소속이라서 양쪽의 훈련을 병행해서 받는 경우가 많아 훈련이 상당히 많은 부대입니다.
3주에 거의 한 번씩 훈련을 하기 때문에 군 생활이 정말 빨리 흘러가는 곳 중 하나이며, 2018년 12월부로 제60여단은 26사단이 8사단에 흡수 개편되면서 8사단에 배속됩니다.
주말 외출을 하는 경우에는 의정부까지가 위수지역이라 외출 여건이 좋은 편입니다. 시설도 나름 괜찮은 편으로, 장병 복지는 잘 챙기는 편입니다.
60여단 예하대대는 주로 6군단 다락대 훈련장을 이용하는데 포천 일대에서 거대 기동사격훈련장이 있어 화력시범을 보이거나 공지합동훈련을 진행하기도 하빈다.
매년 초마다 한미합동훈련 때에는 미 육군의 장갑차나 전차, 장비 등을 구경할 수 있으며, 미 육군과 자주 교류가 있는 부대입니다.
사단급 훈련을 할 때에는 장비를 기차에 결박시켜 양평으로 이동하고 훈련에 참여하며, 지역적으로 수기사와 가깝다 보니 수기사 훈련에 60여단이 대항군으로 차출되는 편인데요.
훈련도 많고 훈련동원도 자주되는 부대이기에 시기가 잘못될 경우 혹한기 훈련을 4번이나 뛰어야 합니다.
여단본부대
제57전차대대 - 백호대대
제123기계화보병대대 - 비호대대
제125기계화보병대대 - 맹호대대
군수지원대대
포병여단과 함께 이전 소속부대였던 제26기계화보병사단에서 이어진 부대라 26사단의 이름이었던 불무리를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여단 마크도 구 26사단 마크에 오뚜기를 추가한 모양이며, 원래는 121기보대대, 123기보대대, 57전차대대가 있었지만.
121기보대대는 제2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되고 75여단이 해체되면서 125기보대대가 넘어오게 됩니다.
57전차대대는 대대 내 간부가 병사보다 많아 근무를 설 병사들이 심각하게 부족하여 미칠 듯한 근무 스케줄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한 전차대대의 특성상 각 전차 중대는 여단 내 각 기보대로 편성되기 때문에 군단이 훈련하면 훈련하고, 사단이 훈련하면 훈련하고.
여단이 훈련하면 훈련하고, 기보대가 훈련하면 훈련하는 불쌍한 부대입니다. 125기보대대는 미 2사단 BSTB 대대와 자매결연 되어서 미군과 연합훈른열 자주 하기도 합니다.
여단본부대
제50포병대대 - 풍익대대
제95포병대대 - 명중대대
제228포병대대 - 화랑대대
제231포병대대 - 백호대대
여단의 예하 부대들이 K9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으며, 26사단이 8사단으로 개편되면서 26사단 포병여단에서 제8기동사단 포병여단으로 명칭이 변경됩니다.
별칭은 사단 개편 이전까지는 제26기계화보병사단의 별칭이었던 불무리를 활용한 불무리포병에서 8사단 포병연대의 별칭이었던 산하진으로 바뀌었습니다.
해체된 옛 8사단 포병연대는 제50포병대대 · 제73포병대대 · 제75포병대대 · 제9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있었으나, 8사단 포병연대의 해체와 함께 모두 해체되었습니다.
다만 오랜 역사를 가진 제50포병대대와 제95포병대대는 명칭을 각각 제222포병대대와 제631포병대대에 남겨주었습니다.
1대 이형근 준장
2대 이성가 준장
3대 최덕신 대령
4대 이성가 준장
5대 최영희 준장
6대 이형석 준장
7대 김익열 준장
8대 이명재 준장
9대 송요찬 소장
10대 장도영 소장
11대 최경록 소장
12대 이치업 준장
13대 안춘생 소장
14대 김종순 준장
15대 김정무 준장
16대 정강 준장
17대 최주종 소장
18대 김인경 준장
19대 장경석 준장
20대 정인완 준장
21대 양봉직 준장
22대 백석주 소장
23대 진종채 준장
24대 장봉천 준장
25대 박노영 준장
26대 김병윤 소장
27대 류근환 소장
28대 최갑석 소장
29대 류준형 소장
30대 정동호 소장
31대 문영일 소장
32대 김도수 소장
33대 이진백 소장
34대 최준식 소장
35대 장창규 소장
36대 정영무 소장
37대 오남영 소장
38대 정중민 소장
39대 김필수 소장
40대 한철용 소장
41대 김선규 소장
42대 오항균 소장
43대 김영후 소장
44대 최북진 소장
45대 김광영 소장
46대 김유근 소장
47대 조현천 소장
48대 제갈용준 소장
49대 김갑수 소장
50대 방종관 소장
51대 최진규 소장
52대 함희성 소장
53대 주성운 소장
제8기동사단은 창설 이래로 대한민국 국군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다양한 전투와 작전에 참여하며,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의 활약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도 다양한 훈련과 작전을 통해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8기동사단은 그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대한민국 군사력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