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때도 지금 이맘때였다. 그러니까 50년도 더 된 기억이다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앞집에 사는 아줌마가 큰 종합병원에서 보조 간호사를 모집하는데 일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하면서, 하겠다면 아는 사람을 통해서 합격하게 해 주겠다고 하더란다.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때 나는 막연하게나마 타이피스트를 꿈꾸고 있었다. 그 당시 타이피스트는 고급 직종이라, 나 같은 아이에게 쉽게 주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일을 해보자 싶어서 지원했다. 합격하게 해 주겠다는 앞집 아줌마의 말만 믿고 지원했지만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에도 간호학원 같은 게 있어서 보조 간호사는 그곳에서 공부를 했던 것 같던데, 그런 것까지도 나는 모르는 상태였다. 암튼, 나는 합격을 했고, 합격한 사람들은 따로 교육이 있었다, 혈압, 체온, 붕대 감는 법, 침상 정리 등, 환자 씻기는 것도 배웠다. 그 당시는 그 정도로 보조 간호사의 일을 할 수 있었던 때였나 보다. 지금은 제도가 어떤지 모른다.
암튼 그때, 같이 들어간 동료 중에서 첫날부터 내 옆에 앉은 친구는 마르고 키가 컸는데, 나 보고 "넌 유난히 어려 보여" 하며, 몇 살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나보다 2살 많았는데 어른스러웠고, 날 잘 챙겨주었다. 우리는 금세 단짝이 되었다. 며칠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가자며 날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그때 다방도 처음이었다.
친구는 집이 시골인데, 이 직장에 들어오기 위해 서울로 왔고, 삼촌 집에 임시로 있는데, 삼촌네 식구가 많아서 오래 있을 형편이 아니라 하숙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날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친구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 집도 괜찮으면 와서 있으라고 해라. 하셨다. 그때 엄마 말이,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는데,였다. 그때는 엄마와 나, 둘만 살고 있을 때였다. 친구는 너무 좋아했고 당장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그리고는 그냥 있지는 못하니까 하숙비로 쌀을 주겠다고 했다. 쌀이 반 말인지, 한 말인지 기억이 안 난다. 그녀가 들고 온, 쌀자루 기억은 난다.
나보다 2살 많은 친구는 언니 같았다. 그때 겨울은 지금 같지 않아 실내에도 보온이 잘 안 될 때였다. 옷도 잘 챙겨주고 머플러도 자기 것을 내게 씌워주기도 하고 버스 손잡이가 너무 차 워 손을 시려하면, 자기 장갑을 벗어서 나에게 끼워준 것도 기억이 난다. 언젠가는 시골 친구네 집에 가서 자고 온 적도 있다. 나는 태어나 보니 도시였고, 시골은 가 본 적이 거의 없을 때라, 친구 집이 너무 좋았다. 버스를 타고 시골길에 내려서도 논밭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서야 친구 집이 있었다. 하룻밤을 자는데 한 방에서 할머니, 어머니, 동생, 친구, 나, 또 어떤 아주머니가 같이 잤던 기억도 난다. 아침에 밥을 할 때 아궁이에 나무뿐만이 아니라 솔방울도 넣고 불을 피우는데, 솔방울 타는 냄새가 정말 좋았다. 그 냄새가 너무 좋아, 그 뒤로 한 번씩 엄마에게 "솔방울로 밥해 줘."라고 주문하기도 했었다. 더 놀랬던 것은 친구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능숙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중에, 보조 간호사 탈의실에서는 자잘한 도난 사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돈이, 지갑이, 무엇 무엇이 없어졌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예사로 생각했다. 내 것은 없어지지 않았으니, 그런 일이 가끔씩 생기나 보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도 난다. 그날도 누가 뭘 잃어버렸다고 했나 보다. 퇴근길에 친구와 버스를 같이 타고 가면서 "자꾸 뭐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잃어버린 적 없어, 너도 없지, 우리하고 친한 아이인가?" 하고 말이다. 뒤에 가서는 내 돈도 일부 없어졌다.
어느 날, 그날은 비가 왔다. 병원은 3교대였다. 친구는 아침에 나갔고, 내가 오후에 나가는 날이다. 나가려고 보니까 예쁜 우산이 있었다. 친구 것인가 보다 하고, 내가 쓰고 가서 친구가 퇴근할 때 쓰고 오라면 되겠다 싶어서 그 우산을 쓰고 갔다. 그날은 아침에는 비가 안 왔고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병실로 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동료 서너 명이 몰려와서는 날 불러내더니, 그 우산 모양새를 말하며 "그 우산 네가 쓰고 왔어?" "네 거야?" 한다. "00 건데 안 쓰고 갔기에 내가 쓰고 왔어. 왜? 우산이 바뀌었어?" 그렇게 대답했다. 흔히, 우산을 잘못 바꾸어 들고 가기도 하니까. 동료들은 알았다 하고는 돌아갔다. 그때도 나는 정말 감을 못 잡았다. 그 당시 나는 일을 참 재미있게 했었다. 환자들에게도 상사에게도 칭찬을 많이 들었다. 멋모르고 들어갔지만, 나는 열심히 일했다. 험하고 궂은일도 싫어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은 환자들 얼굴, 발 등도 깨끗이 닦아주었고 손톱도 잘 챙겨가며 깎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일에 애정을 가졌던 기억이다. 한참을 지나고 난 뒤, 다른 친구가 나보고, 그때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투표가 있었는데 내가 1위였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 정도로 나는 열심히 올인했고 내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있었기에 그런 일에 내가 연루되었다고 생각조차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좀 지났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 달 안 팍이지 싶다. 그날도 친구는 아침반이라 나가고 나는 오후에 나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다른 동료가 들어오더니 날 보고서는, "에구, 너도 마음고생 끝났구나,“ 하며 친구가 오늘 나갔다며 나를 위로하듯 말한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누구가? 왜? 아니야. 오늘 출근했어."
그때서야 동료로부터 그동안의 행동이 그 친구였다며, 조금 전에 간호 부장실에 불려 가서 보조 간호사 대여섯 명 앞에서 반성문 썼는데, 며칟날 누구 거, 무엇을, 얼마나 훔쳤는지 쓰게 하고, 동료들 앞에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고, 그리고 잘려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동료가 하는 말은 더 기가 찼다. "처음엔 널 모두 의심했어. 다른 사람들 것은 다 없어지는데 네만 없어졌다는 말이 없으니까. 그리고 네가 환자들에게 잘하니까, 그런 것을 감추려고, 이중적이라 하면서.. 넌 진짜 모르는 것 같더라." 정말,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친구 반성문에 "네 거는 안 훔치려고 했는데, 네가 오해를 받는 것 같아서 네 것도 한 번 가져갔다더라."이다.
퇴근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친구는 엄마에게 시골에 갈 일이 생겼다며 짐을 챙겨 갔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와 나는 속이 너무 상했다. 그런 짓을 한 친구보다 친구에게 한 그들의 짓에 더 화가 났다. 친구가 한 짓은 나쁜 행위였지만, 밝혀냈으면 주의를 주고 조용히 내 보내면 되는 거지, 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토록 잔인하게 일일이 그 사건을 쓰게 하고, 창피와 모욕을 주고, 그렇게 내 보내야 했는지.
시간이 좀 지난 후, 나는 친구에게 안부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답장을 받았다. 그때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받고 하면 보통 한 달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답장 속의 내용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시골 내려와서 바로 결혼했다는 것이다. 겨우 20살이 넘었을 뿐인데, 벌써 결혼이라니, 나는 꿈도 꿔 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사건이 얼마나 쇼크가 컸으면 바로 결혼을 했을까 싶었다.
그 친구가 나가고 몇 달 후 나도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난다. 내 손으로 처음 골라보는 예쁜 커피세트. 그것을 사서 들고서는 친구를 찾아 그 먼 시골길을 혼자 갔다. 예전에 함께 갔던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니, 동생이 날 데리고 다시 이웃에 있는 남자의 집으로 갔다. 대문을 삐꺽 열었는데, 보이는 넓은 안마당에서, 긴 월남치마를 입고 있던 키 큰 친구, 친구라기보다는 나보다는 십 년은 더 된 어떤 아줌마가 거기 있었다. 친구는 그래도, 멀리서 온 나를 위해, 밥을 하고 나물을 하고, 생선을 구워 상을 차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사들고 간 커피잔에 숭늉을 따라 마셨다. 그 시간이 참 길었던 기억이다. 우리는 함께 지낸 동안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만난 친구는 왜 그리 어색하던지.
1년이 채 안 된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좋은 친구도 만났다. 두 친구는 그곳에서 오래 근무했고, 그 후에도 오래 함께 만났다. 한 친구는 독일에 간호사로 갔고, 한 친구는 자기 오빠와 나를 이어 주어서 결혼을 하게 하려 했는데, 그 중간에 이상한 남자가 끼어 들어서 지금은 그 이상한 남자와 40년을 넘게 살고 있다.
딸이, 엄마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어? 하며 새삼 놀랜다. 참 그렇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간다. 그 많은 세월 중에 얼마나 많이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만났을까.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쭉 이어오는 인연은 얼마나 될까. 그런 인연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핏줄 일 것이다. 그다음에야 친구들, 지인들, 그중에는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 또 보고 싶고 궁금하지만 껄끄러워 연락 안 하고픈 사람, 찾아보고 싶은 사람들, 새로 사귄 사람들.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이 친구를 생각한다. 만난 기간이 불과 6개월 남짓한 것 같다. 물론 이름도 기억한다. 그녀의 마르고 뻣뻣하고, 광대뼈가 조금 튀어나온 그때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다지 수다스럽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녀가 나에게 해 준 따뜻한 행위들도 몇 가지 기억하고, 나눈 대화도 몇 개는 기억 한다. 그러나. 지금 어느 모임에서 만난다 해도, 변한 그녀의 모습을 알아볼 자신은 없다. 아니, 전혀 못 알아보지 싶다.
그녀가 떠오르면 그때의 상황도 떠오른다. 나는 정말 그렇게 몰랐을까?. 내가 첫 범인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런 낌새를 못 느꼈다. 뒤에서야 그런 사실을 알고서는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당사자인 나는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내가 아닌 다른 형태로 내가 되어 그녀들의 입에 한동안 오르내렸으려니 생각하니 기가 찼다. 하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전혀 내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는 화도 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내 이웃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이웃의 몇 가지 습관과 행동으로 우리는 그들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류다. 나는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난 후, 내가 왜 그랬지?라고 생각할 때도 많으니까.
새해, 여기저기 친구, 지인에게 안부 인사를 보내며 그 과묵하고 따뜻했던 친구가 또 떠올랐다. 내가 아는 친구는 착하고 따뜻했고, 과묵했었다. 문득, 그립다.